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기예천

일본 근대조각의 거장 다카무라 고운이 만년에 제작한 불교조각 <기예천>이다. 기예천은 모든 기예技藝를 관장하고 복을 가져오는 불교의 천부天部 중 하나로, 이와 관련된 밀교 수법修法에서 화려한 장식을 몸에 걸치고 오른손으로는 치맛자락을, 왼손에는 천화天華를 들고 등장한다. 고운의 기예천은 오른손으로 치맛자락을 쥐는 대신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왼손에는 꽃이 가득 담긴 그릇을 받쳐 들어 천화의 존재를 강조하였다. 작은 크기이지만 형태는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노련한 기술로 완성한 세부 표현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상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기예천은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에서 근대 이전에 실제 조형된 예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나라(奈良)의 아키시노데라(秋篠寺)에 기예천으로 전하는 가마쿠라 시대 목조상이 1구 있을 뿐인데, 1880년대에 이를 조사·연구한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 1863~1931)은 이 상이 경전에 설하는 기예천이 아닌 것을 확인하였다. 훗날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에서 교편을 잡게 된 덴신은 제자들에게 기예천의 도상에 대해 연구해 볼 것을 권하였고, 실제로 1890~1910년대 다케노우치 히사카즈(竹内久一, 1857~1916)를 필두로 한 도쿄미술학교 출신 작가들이 기예천의 도상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근대적 개념의 ‘예술’이 확산된 상태에서 전근대적 장인들의 기교나 기법을 가리키는 ‘기예’를 관장하는 기예천은 신진 작가들의 흥미를 끌기에 역부족이었다. 같은 도쿄미술학교의 조각과 초대初代 교수로 재임 중이었던 다카무라 고운도 당시에는 기예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신 그는 동상 제작과 같은 근대적 공공 조각 사업에 몰두하였다. 지금도 도쿄 우에노 공원(上野公園)과 황궁 앞 광장에서 볼 수 있는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西郷隆盛像)>(1898)과 <구스노키 마사시게 동상(楠木正成像)>(1900)이 모두 이 시기에 고운이 이끄는 작가 집단이 제작한 것이었다. 같은 조각과 교수였던 히사카즈가 기예천을 서양의 뮤즈와 같은 존재로 부각시켜 보려 애썼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그렇게 전근대적 기예의 신, 기예천은 작가들의 뇌리에서 잊혀 갔다.
이미 1890년에 제실기예원帝室技藝員으로 임명된 다카무라 고운은 1907년 관설전람회官設展覽會가 시작될 때부터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이후 1919년 제국미술원帝國美術院 회원으로 임명될 때까지 근대기 일본의 조각이 예술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과정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1926년 도쿄미술학교를 퇴직한 이후에는 근대적 예술가의 모습을 내려놓고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불사佛師, 즉 장인으로서의 정체성에 회귀하면서 전통적인 불상을 다수 제작하였다. 이 작품도 바로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전근대적 장인과 근대적 예술가의 경계에 서 있는 작가 다카무라 고운이 다시 한번 기예의 의미에 대하여 천착하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미가 한층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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