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일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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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영상] 대를 이은 문화재 사랑-기업가 손세기⋅손창근
보물보다 귀한 가치를 세상에 남긴 아버지와 아들
대를 이은 문화재 사랑 손세기·손창근
대를 이은 문화재 사랑은 한 개성 상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석포 손세기, 그는 개성삼업조합에 몸담아 인삼재배와 무역에 종사하며 일제강점기 우리 겨레의 토착자본 성장에도 애쓰던 사업가였다.
<손성규 손세기 선생 손자 인터뷰>
저희 할아버님이요, (남한에) 피난 오셔서 사업을 다시 아버님하고 같이 일구셨던 분이시죠. 사업해서 여유자금이 생기면 허튼 데 쓰지 않으시고 문화재수집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셨어요.
손세기 선생은 특히 고서화를 사랑했다. 특별전이 열리면 전시실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였고, 고서화 수집에도 열심이었다. 1973년, 손세기 선생은 칠순을 앞두고 당시 박물관이 없었던 서강대학교에 귀한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다. 선생이 어떤 마음으로 기증했는지는 당시 기증서 글에 잘 드러나 있다.
우리의 선조께서 물려주신 유품들을 영구보존 하여주시고, 귀교에서 수업하는 학생들이 이 박물관을 통해 우리의 옛 문화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바라나이다. -1973년 1월 30일 석포 손세기
아버지와 아들, 함께 문화재를 수집하다
아들 손창근 씨가 장성한 후에는 함께 문화재 수집에 나섰다. 둘은 좋은 작품을 찾아 발품을 마다하지 않았고 어떤 작품을 살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아들 손창근 씨는 한국 회화를 공부해가며 문화재 수집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중 김정희의 대표작인 잔서완석루는 아버지가 추천해 증권까지 팔아 산 것이다. 부자는 이렇게 모은 문화재들을 박물관의 여러 특별전에 출품해 대중에 공개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인터뷰>
조선 시대 내로라하는 작가들, 반드시 거론되고 있는 회화사적인 업적과 역할이 큰 화가들의 것들을 다 가지고 계시죠. 박물관이 전시할 때 빌려다가 전시하곤 했습니다.
대를 이어 아낌없이 나누다
2018년, 손창근 선생은 유물 202건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여기에는 1447년에 편찬한용비어천가 초간본과 추사 김정희가 그린 유명한 난초 그림인 불이선란도, 김정희의 제자였던 소치 허련이 존경과 애정을 담아 그린 김정희 초상이 포함되어있다.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인터뷰>
특히 추사 쪽은 대단한 컬렉터라고 생각됩니다. (추사와) 교류를 했거나 제자 관계에 있는 작가들의 것을 같이 모으셨어요. 그래서 시대 전체를 함께 살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신 거죠.
<손창근 선생>
그저 한 점 한 점 정들고 한 점 한 점 애착이 가는 물건들인데 나 대신 길이길이 잘 보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끼던 마지막 한 점의 문화재
하지만 아직 기증되지 않은 채 남은 한 점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였다. 세한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구매해갔다가 어렵게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이수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인터뷰>
손재형 선생님이 (일본에서) 세한도를 가져오신 후에 고이 간직하고 계셨다가 1970년대에 손세기 선생님께 세한도가 넘어가게 돼서 손세기 선생님이 새로운 세한도의 주인이 되신 겁니다.
세한도는 문인화의 대표작이다. 유배 중인 자신을 변함없이 대하는 제자 이상적에게 김정희가 고마움을 담아 보낸 작품으로 선비의 고매함이 응축되어 있다. 당대의 청나라 유학자들 16인이 감상평을 덧붙여 현재 1,388cm의 긴 작품이 되었다. 손창근 선생은 대를 이어 50년을 애지중지해 온 세한도를 두고 끝까지 고민했다. 그리고 2020년, 손창근 선생은 조건 없이 세한도를 내놓았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한 유물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매한 실천으로 모두의 유산이 된 것이다.
<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인터뷰>
한번은 외국 박물관에서 화재가 났다는 뉴스를 들으시고 (손창근 선생님이) 전화를 하신 적이 있어요. 우리 유물이 안전한지 확인하셨습니다. 대를 이어서 수집하신 문화재를 소중하게 잘 보관해서 후세에 전하는 것이 당신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하신 듯합니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애정과 높은 안목으로 대를 이어 수집하고 기증한 손세기·손창근 부자. 이들의 선택은 귀한 문화재를 더욱더 귀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큰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