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긴 정몽주鄭夢周의 절의節義
우리 역사에서 명필名筆로 손꼽히는 신라의 김생金生(711~791)과 최치원崔致遠(857~?), 고려의 정몽주鄭夢周(1337~1392), 조선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1418~1453)과 성수침成守琛(1493~1564)․황기로黃耆老(1521~1575)의 글씨를 모아 돌에 새겼다.
정몽주의 글씨는 1362년(공민왕 11)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곽추郭樞(1338~1405)를 전송하며 정몽주가 직접 쓴 시의 일부 구절을 따온 것이다. 과거시험 동기인 곽추가 국정國政의 잘잘못을 비판하다가 낙향하자,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 차라리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내용의 시를 쓴 것이다. 신념 깊은 성리학자이자 문인 관료로서의 절의가 잘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