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금동 외함

1942년 황복사皇福寺로 전해오는 경주 구황동 절터의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구이다. 금동 외함 안에는 금 합이 은 합에 담긴 채 한 가운데에 놓여 있었고, 은 합의 남쪽과 북쪽에는 불상이 1점씩 있었다. 그 외에도 외함 안에서는 유리 구슬, 굽다리 잔, 대나무 편, 금실 등의 공양구도 함께 발견되었다. 외함 뚜껑 안쪽에 새겨진 글에 따르면 692년 신문왕神文王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효소왕孝昭王이 어머니인 신목왕후神睦王后와 함께 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신라 성덕왕聖德王(재위 702~737)은 706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인 신문왕과 신목왕후, 형인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부처의 사리, 금으로 만든 불상,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석탑 2층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외함 옆면에는 99기의 소탑을 점선으로 새겼고, 뚜껑 안쪽 명문에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권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704년 중국 당나라에서 번역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는 “진흙으로 99기의 작은 탑을 만들고 그 속에 4종의 다라니를 써서 불탑 속에 공양하면 99,000기의 불사리탑을 세우는 것과 같다”고 하는 불탑 공덕 관련 내용이 있다. 외함의 명문과 소탑 무늬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근거한 다라니 신앙이 706년에 이미 신라에서도 유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당나라에서 번역된 경전이 바로 신라에도 전파되어 최신의 불교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