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이란 무엇인가?
우묵한 그릇 위에 꼭 맞는 뚜껑을 얹어 닫게 한 그릇을 가리켜 보통 합(盒)이라고 합니다. 합은 그 안에다가 무언가 바깥 공기를 자주 쐬면 안 되는 물건을 넣기 위해 만듭니다. 예컨대 먹을 거라든지, 화장품이나 장신구 같은 귀한 물건들 말이지요.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런 용도의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삼국시대 무덤에서 나오는 토기 합을 보면 둥글게도 만들고 각지게도 했는데, 모양에 따라 쓰임새가 조금씩 달랐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흙으로 합을 빚어 구워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뚜껑과 몸체를 각각 따로 만들어 구워야 하므로, 비록 가마 안에서 터지거나 주저앉지 않더라도 둘을 합쳤을 때 틈 없이 딱 들어맞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토기 합, 삼국시대, 높이 7.3cm(왼쪽), 신수1010
고려시대로 넘어오면 합의 모양새도 다채로워질 뿐만 아니라 나무에 옻칠을 한 것, 상감을 한 청자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든 합이 확인됩니다. 아니 이전에도 분명 나무로 만든 합은 있었습니다만, 대개는 천년 넘는 세월 동안 버티지를 못한 것이겠지요.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사례가 있기는 하나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목합(木盒)은 실물로 꽤 여럿이 확인됩니다. 최근 개최된 특별전 ‘漆, 아시아를 칠하다’에서 공개된 나전(螺鈿) 합을 예로 들 수 있겠지요.
나전 국화넝쿨무늬 자합(子盒), 고려 14세기, 9.8cmx7.0cmx3.0cm,
나무에 칠, 자개, 금속, 신수51951
나전 국화넝쿨무늬 자합, 고려 14세기, 9.5cmx4.9cmx4.6cm,
나무에 칠, 자개, 금속, 덕수1721
참 귀여운 크기지만 결코 얕볼 물건은 아닙니다.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영롱한 빛을 발하는 자개를 박은 솜씨하며, 위아래 어디 하나 뒤틀리지 않고 꼭 맞는 뚜껑과 그릇…. 그런데 그 모양이 참 희한하지요. 합의 위쪽 바깥 부분은 뫼 산(山) 자처럼 모양을 내었나 싶더니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는 활처럼 둥근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왜 굳이 이렇게 복잡한 모양으로 만들었을까요?
자식을 품은 어미를 본뜨다
청자 모란무늬 국화 모양 합, 고려 13세기, 전체 높이 8.8cm, 뚜껑 높이 3.3cm, 입지름 16.1cm, 높이 4.2cm, 덕수4039
그 의문을 풀어줄 유물이 바로 여기 소개하는 청자 모란무늬 국화 모양 합입니다. 이 합은 고려 13세기쯤에 만들어졌습니다. 서리를 맞아도 시들지 않는 절개를 뜻하는 국화 모양으로 제법 크게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흑백상감(黑白象嵌)으로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을 새겨 넣었습니다. 좋다는 건 다 모여 있군요. 그런데 이렇게만 봐서는 도대체 저 위의 나전 합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럼, 뚜껑을 한번 열어보실까요?
청자 모란무늬 국화 모양 합을 연 모습
청자 모란무늬 국화 모양 합 안에 든 자합과 유병을 꺼내 뒤집은 모습
짠! 어떻습니까. 합 속에 또 합이 들어 있지요? 가운데에 조그만 유병(油甁)을 두고, 작은 합 네 개를 그 옆에 둘렀습니다. 그런데 유병의 사방을 두른 합의 모양이 고려 나전 합과 똑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나전 합은 원래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큰 합이 따로 있고, 그 합이 다른 합들을 품었던 것이지요. 이런 합을 어머니가 자식을 감싸 안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모자합(母子盒)’이라고 합니다. 큰 합이 어머니 모합(母盒), 작은 합이 아들딸 자합(子盒)인 셈이지요.
이 모자합은 주로 여성들의 화장용품을 담았던 것이라고 합니다. 조그만 유병에는 향수나 머릿기름을 넣고, 작은 합에는 분이나 연지 같은 화장품을 담았겠지요. 그래서 농담 삼아 “이 큰 합은 파우치나 섀도 팔레트고, 저 귀여운 병은 이른바 ‘갈색병’이고, 저기에는 28호가 들어가고…”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고려시대 사람들은 이 모자합을 어떻게 사용했을까요? 시곗바늘을 잠깐 700여 년 전으로 돌려보시지요. 목적지는 고려의 수도 개경, 어느 세족(世族)의 집 안채입니다.
규방(閨房)에 한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바로 앞에는 화려하게 돋을새김한 거울걸이가 있고, 그 위에는 반짝거리는 구리거울이 얹혀 있군요. 나무로 만든 빗이 있는 걸 보니 이제 막 머리 단장을 끝낸 모양인가 봅니다. 예쁜 가락지를 낀 여인의 손가락이 거울걸이 옆을 향합니다. 아까 우리가 본 모자합이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여인은 그 모합의 뚜껑을 들어 엽니다. 그 안에는 자합과 유병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여인은 잠시 그것을 바라보더니, 유병과 합 하나를 꺼내 듭니다. 유병의 뚜껑을 열고 그 안의 향유(香油)를 손바닥에 몇 방울 떨어뜨린 뒤, 조심스레 얼굴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작은 합의 뚜껑을 살포시 열고, 그 안에 든 분을 작은 붓에 살짝 묻혀 얼굴로 가져갑니다. 토닥토닥, 거울에 비친 여인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지면서 차츰차츰 미소가 번집니다.
사람은 가고 왕조도 스러졌는데
말 없는 저 청자 모자합은 수백 년의 시간을 달려서 오늘 여기 남았습니다. 박물관 진열장 안에 들어앉은 뚜껑을 약간 열어 유병과 합들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모자합을 볼 때마다 저는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말을 걸곤 합니다. ‘당신이 담고 있던 화장품을 썼던 이는 어떤 사람이었는지요? 아이를 여럿 낳아 잘 길렀던 어머니였던가요? 고려시대 어머니도 그대처럼 모든 자식을 품에 안은 존재였던가요? 지금 우리네 어머니가 그러한 것처럼….’ 상상 속에서는 어느새 유물과 진지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만, 늘 그렇듯 박물관의 유물은 입을 꾹 닫고 있습니다. 다만 화려한 무늬와 광택, 그리고 그 넉넉한 품 안에 자식을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만을 보여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