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효종어필 칠언시> - 효종의 감정이 담긴 시 : 허문행

<효종어필 칠언시>, 효종, 조선 1645년,  43.8×51.7cm, 보물, 덕수6222

<효종어필 칠언시>, 효종, 조선 1645년, 43.8×51.7cm,
보물, 덕수6222

보물(옛 지정번호 보물 제1628호) <효종어필 칠언시>는 효종(재위 1649~ 1659)이 27세되던 1645년(인조 23)에 짓고 쓴 시입니다. 이 글씨는 족자 형태로 꾸며져 있으며 크기가 43.8×51.7cm로, 시 위쪽에 ‘효묘어필진적(孝廟御筆眞蹟)’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습니다. 효묘는 효종 임금을, 어필 진적은 임금이 직접 쓴 글씨를 뜻합니다. <효종어필 칠언시>는 오늘날 전하는 효종의 진적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글씨마다 당당하고 힘찬 기운이 돋보이며, 효종의 문학관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효종,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효종은 인조(재위 1623~1649)와 인열왕후(仁烈王后, 1594~1635)의 둘째 아들로 본명은 이호(李淏)입니다. 1626년(인조 4) 7세 되던 해 봉림대군(鳳林大君)에 봉해졌습니다. 효종은 병자호란 이후 맏형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가게 되는데, 1637년(인조 15)부터 8년간 심양(瀋陽)에 머무르며 포로로 잡혀온 백성들을 위로하고 세자를 대신해 위험한 전쟁터에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효종은 1645년(인조 23)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복한 이후 조선으로 귀환하였고, 얼마 후 소현세자가 갑자기 숨을 거두자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효종은 세자가 된 이후에도 부지런하게 학문을 익혔으며, 인조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올릴 만큼[斷指] 지극한 효성을 보였습니다. 1649년(인조 27) 5월 인조가 승하한 후 조선의 제17대 임금으로 즉위했습니다.

효종의 문학관

효종은 청나라로부터 입은 설욕을 갚기 위해 북벌(北伐)을 추진한 강인한 군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청석령’이라는 시조를 비롯해 100여 수에 달하는 한시를 남길 만큼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효종은 대군 시절 스승 윤선도(尹善道, 1587~1671)로부터 한시를 배웠고, 청나라에 볼모로 있을 때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생존을 위해 굴욕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토로하는 시를 짓기도 하였습니다(『列聖御製』 2, 「燕京有感」, 「賜鄭柟壽⋅其二」). 효종의 이러한 마음을 알아주는 지기(知己)는 바로 동생 인평대군(麟坪大君, 1622~1658)이었습니다. 효종은 즉위한 뒤에도 인평대군과 시를 주고받으며 돈독한 우애를 이어나갔습니다. 효종에게 시는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마음을 위로하고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효종필적> 중 당나라 맹호연의 시 춘효春曉, 효종, 조선 미상,  60.6×40.3cm, 본관8176

<효종필적> 중 당나라 맹호연의 시 춘효春曉, 효종, 조선 미상, 60.6×40.3cm, 본관8176

<효종어필 칠언시> 읽어보기

<효종어필 칠언시>는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어필을 모은 『열성어제(列聖御製)』와 인평대군의 시와 글을 모은 『송계집(松溪集)』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世上浮名摠是空 세상의 헛된 이름 모두 부질없고
臨流豪興一杯中 냇가에서 술 마시니 호방한 흥이 이네
高車局束誠還慚 높은 지위에 구속되니 참으로 한스럽고
泉響滔滔恨不窮 흘러가는 샘물 소리에 한탄이 끝이 없네
題於屋後小泉 집 뒤의 작은 샘에서 짓다

<효종어필 칠언시>는 『열성어제』에 “을유년(乙酉年, 1645) 늦가을에 지었는데, 이달 27일에 세자에 책봉되었다.”는 기록과(『列聖御製』 8, 麟坪大君家後小泉謾吟二絶」), 『송계집』에 “인평대군 집 뒤의 작은 샘에서 지었다.”는 기록(『松溪集』 1, 詩」)을 통해, 1645년 9월 효종이 세자로 책봉될 즈음 인평대군의 집에서 짓고 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구절의 ‘세상의 헛된 이름’과 세 번째 구절의 ‘높은 지위’는 세자의 자리에 오른 효종을, 두 번째 구절의 ‘호방한 흥’과 네 번째 구절의 ‘흘러가는 샘물 소리’는 풍류(風流)의 삶을 즐기는 인평대군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효종은 장차 나라를 경영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자, 인평대군을 부러워하는 시를 지음으로써 위로받고자 하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처럼 <효종어필 칠언시>는 효종의 속마음과 문학관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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