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제도금화형탁잔, 고려12세기, 높이 12.1㎝, 지름 54.3㎝, 보물, 덕수130
탁잔은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요?
탁잔은 액체를 마시는 데 사용한 그릇으로 액체를 담는 잔과 잔을 받치는 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탁잔은 보통 주전자와 세트를 이루어 사용되며, 잔의 크기에 따라 찻잔과 술잔으로 구분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차를 마시는 데 사용한 탁잔은 잔의 크기가 크고, 술을 마시는 데 사용하던 탁잔은 잔의 크기가 그보다 작습니다. 차는 따뜻하게 마시므로 찻잔은 열전도가 잘 되는 금속보다는 자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금속은 열전도가 잘되기 때문에 뜨거운 음료보다는 차거나 미지근한 음료를 마시는 데 사용했을 것입니다.
탁잔의 기원
탁잔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요? 중국 하남성 밀현(密縣) 타호정(打虎亭) 한묘(漢墓)의 화상석 에는 잔 아래에 받침인 반이 달린 도상(圖像)이 등장하는데, 이것으로 보아 한나라 때에도 잔과 탁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탁잔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남북조시대부터라고 볼 수 있고, 주로 남조에서 청자로 만든 탁잔을 사용하였습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는 접시 모양이나 나팔 모양의 탁이 달린 것들을 제작·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백제에서 탁잔을 사용했는데, 무령왕비의 머리 부근에서 발견된 동탁은잔(銅托銀盞)을 비롯해 나주 복암리에서 출토된 녹유탁잔(綠釉托盞)이 대표적입니다. 통일신라시대에도 녹유 탁잔이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에는 금속제 탁잔과 청자 탁잔이 제작, 사용되었습니다.
서긍이 본 고려시대 은제도금탁잔
1123년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은 고려에 체류하는 동안 다양한 기명(器皿)을 접하고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그가 본 고려의 기명을 기록하였습니다. 『고려도경』 권30 기명2에는 서긍이 보았던 고려 탁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盤琖之制, 皆似中國. 惟琖深而釦斂, 舟小而足高. 以銀爲之, 間以金塗, 鏤花工巧.
每至勸酒, 則易別杯, 第量容差多耳.
반잔(盤琖)은 중국의 것과 비슷하다. 다만 잔의 깊이가 더 깊고 구연부가 오므라졌으며, 탁반[舟]은 작고 굽[足]은 높다. 은으로 만드는데 간혹 도금하기도 하였으며, 무늬를 새긴 것[鏤花]이 정교하다. 술을 권할 때마다 다른 잔으로 바꾸는데, 용량이 다소 많을 뿐이다.
서긍이 보았던 탁잔은 은으로 되었거나 도금한 탁잔으로 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고, 탁잔은 술을 마시는 데 사용하며, 술을 권할 때마다 다른 잔으로 바꾸어 사용하였고, 잔의 크기가 중국의 것보다는 크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은제탁잔 또는 은제도금탁잔은 12세기 전반 고려에 온 외국 사신을 위한 연회에서도 사용하였던 것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서긍의 기록에 부합하는 고려시대 은제도금탁잔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은제도금탁잔의 조형과 무늬
보물(옛 지정번호 보물 제1899호) 은제도금탁잔은 꽃잎이 6개 달린 꽃 모양 받침과 잔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윗부분에 넓은 전이 달린 탁은 아래에 6개의 꽃잎 모양의 굽이 달려 있으며, 굽 아랫부분에는 음각으로 꽃무늬를 새겼습니다. 전 윗면에는 연화당초무늬를 음각으로 새겼고, 안쪽으로 파인 잔 받침 주위로는 짧아진 연화당초무늬가 같은 방식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잔을 올려놓는 괴임에는 가장 화려한 무늬가 다양한 기법으로 새겨졌는데, 괴임의 측면은 돌출된 릉(稜)으로 꽃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돋을새김[打出]으로 꽃송이를 화려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괴임의 윗면은 돋을새김한 연판무늬를 외곽에 두고 그 안에 연꽃무늬를 표현하였습니다. 6개 꽃잎 모양의 잔은 굽과 몸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굽의 아랫부분에는 받침과 같은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무늬의 통일성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잔의 몸체는 바깥 면에 음각으로 모란무늬를 표현하였고, 꽃 모양을 만들기 위해 음각으로 만든 골에도 대칭으로 절지무늬를 새겼으며, 입 부분에도 꽃무늬를 새겼습니다. 잔의 안쪽 바닥에는 중앙에 연꽃무늬를 새기고 그 주위를 잎무늬로 감쌌습니다.
은제도금탁잔은 6개의 꽃잎 모양을 기본 조형으로 하여 적절한 비례와 통일감 있는 무늬 표현으로 아름다움을 더하였습니다. 국내외에 5~6점의 은제 또는 은제도금탁잔이 전하지만 보물 은제도금탁잔과 같은 조형성과 무늬를 표현한 것은 없습니다. 은제도금탁잔의 조형과 무늬는 같은 시기 청자 탁잔에도 영향을 주어 6개의 꽃잎 모양의 순청자나 상감청자 탁잔이 제작되었고, 무늬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탁잔과 주자
탁잔은 액체를 마시기 위해 만든 음용기로 보통 주자와 세트를 이룹니다. 보물 은제도금탁잔과 세트를 이루는 은제도금주자는 국내에 남아있지 않지만, 미국 보스톤미술관 소장 은제도금주자는 세트로 어울리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은제도금탁잔과 은제도금주자는 기명의 우아함을 보여주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금은기이자 당시 왕실을 포함한 지배층의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