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청자의 나라였습니다. 아름답고 찬란한 청자는 오늘날 고려시대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공예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도 백자는 제작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경기도 개성부근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고려 백자 매병입니다. 전체적으로 푸른 비색(翡色)을 머금은 청자와는 달리 부드러운 백색이 시선을 끕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 백자 중 드문 예일뿐더러 독특한 미감을 뽐내는 이 매병은 보물로도 지정되어 있습니다.
백자 상감 모란 갈대무늬 매병, 고려 12세기 후반~13세기,
높이 28.8㎝, 보물, 덕수1316
매병의 다른 면
백자 속의 청자
매병의 윗부분
이 백자 매병은 벌어진 입, 풍만한 어깨, 좁아지는 허리선과 살짝 반전되는 저부를 갖춘 전형적인 고려 매병입니다. 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 제작된 작품으로 보입니다. 고려청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참외 형태로, 이 매병도 몸체를 여섯 등분한 뒤 골을 내어 입체적인 참외 모양을 연출하였습니다.
입 아래에는 여의두(如意頭)무늬를 양각하고 그 아래에는 연판(蓮瓣)무늬를 둘렀습니다. 굽 윗부분에도 연판무늬를 양각으로 새겼습니다. 이로써 고려백자는 청자의 형태와 장식문양을 본떠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백자의 가장 큰 특징은 면 처리와 문양 표현에 청자 바탕흙을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면마다 흑상감으로 긴 마름모꼴[菱形]의 윤곽을 상감하고 그 안에 청자 바탕흙으로 면상감(面象嵌)을 하였습니다. 면상감을 한 부분에는 모란무늬, 풀과 갈대무늬[草蘆文] 버드나무와 물가풍경 무늬[蒲柳水禽文] 등을 흑백상감해서 넣었습니다. 모란은 절지(折枝)형태로 단정한 느낌을 주며 갈대와 새, 버드나무와 물새 표현은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러한 점에서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장식 부분을 청자 바탕흙으로 상감하여 백자와 청자 제작 기술을 하나의 그릇에 녹여 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자에 청자 바탕흙을 상감해 넣고, 다시 그 안에 상감하여 무늬를 나타낸 것은 이 매병이 유일합니다. 백과 청의 조화가 돋보이며 고려인들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유색(釉色)은 푸른색을 띠며, 빙렬(氷裂)이 전면에 퍼져 있습니다. 굽는 과정에서 병 아래쪽이 약간 주저앉아 형태는 조금 찌그러졌지만 희귀한 백자임은 분명합니다. 고려시대 도자공예를 통틀어 백자와 청자 기술이 혼합되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대표적 작품입니다.
고려 백자의 제작
한반도에서 자기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시기에 축조된 벽돌가마[塼築窯]에서 백자를 생산했다는 사실이 고고학적 조사로 밝혀졌습니다. 도자 제작 기술이 중국에서 고려로 들어오면서, 10세기 후반경 개경을 중심으로 중부 서해안에 가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40여 미터에 이르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일대 가마와 형태가 유사한 가마가 고려 초기에 축조되었습니다. 이런 초기 가마에서 청자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백자가 생산되었고, 특히 경기도 용인 서리 가마터는 주요 생산품이 청자에서 백자로 바뀐 사실이 고고학적 층위 조사로 밝혀졌습니다. 이 가마터의 퇴적층 가장 아래에서는 초기에 제작된 청자들이, 그 위층에서는 백자가 주로 발견되어 처음에 청자를 제작하다가 차츰 백자를 제작하는 가마로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대표적인 청자 생산지인 부안이나 강진 등의 가마터에서도 백자가 발견되어, 주류는 아니지만 고려시대 청자의 전성기 속에서 백자 역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각종 백자는 청자의 형태나 문양을 본떠 만들었으며, 상감청자가 유행했던 시기에는 이 작품처럼 상감청자의 영향을 받은 백자도 제작되었습니다. 다만 고려 사람들이 청자를 더 선호했기 때문에 백자는 적은 양만 생산되었고 따라서 완형으로 전하는 예도 드뭅니다. 자연스럽게 백자보다는 청자제작에 더 힘쓴 것으로 보입니다.
부안 유천리 가마터 출토 백자들
강진 사당리 가마터 출토 백자들
아시아 도자 연구의 저명한 학자 나이젤 우드(Nigel Wood)는 고려 백자의 기술 발전에 어느 정도 제한이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 이유로 한국에서 사용된 원료가 중국의 것보다 덜 희었거나 또는 원료자체가 아마도 덜 매력적이었을 것이며, 11세기 후반에 양질의 청자 기술이 발전한 점을 꼽았습니다.
한편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조사된 백자를 과학적으로 조사하였는데, 태토 주성분을 분석해 보니 고려 백자는 고려청자 그룹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를 근거로 고려청자와는 확연히 다른 태토 원료를 사용하여 제작하였을 것이라 추정되었습니다. 또한 고려 백자의 상감에 사용된 흙이 고려 청자에 사용된 흙 성분과 매우 유사하여 고려 백자의 상감기법과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려 백자의 유약은 고려청자 유약 성분과도 유사하여 청자와 백자와의 상호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번조 온도는 1200~1250도 범위에서 광물 입자가 녹아 들어가는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 따라서 고려 백자의 적정 번조 온도는 고려청자에 비해 더 높았을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고려 백자의 멋
고려 백자는 발, 접시, 합, 뚜껑 등 실용적인 기종과 향로, 매병, 잔탁, 나한상 등 특수한 용도로 제작한 기종이 있습니다. 무늬 표현방법은 음각, 양감, 상감 등 고려청자의 다양한 문양표현과 유사합니다. 이 가운데 고려 백자의 대표적인 예 두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백자 음각 연꽃무늬 매병>과 <백자 음각 연꽃무늬 병>입니다.
백자 음각 연꽃무늬 매병, 고려 12세기 후반~13세기, 높이 30.0㎝, 덕수3175
백자 음각 연꽃무늬 병, 고려 12세기, 높이 35.1㎝, 덕수598
이 매병은 고려 매병의 전형적인 형태로 어깨가 풍만하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홀쭉해집니다. 다만 하얗게 빛나고 있어 백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몸체에 연꽃무늬를 비스듬히 깎아서 무늬를 입체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모란에는 화맥(花脈)과 엽맥(葉脈)을 새겨 세밀함을 더했습니다. 아랫부분은 양각으로 연판문(蓮瓣文) 띠, 음각 번개무늬[雷文] 띠를 2단으로 둘렀습니다. 일부 유약이 벗겨진 부분이 있지만, 완벽한 형태의 백자 매병에 세밀한 무늬까지 새겨진 예는 거의 없어 주목됩니다. 청자의 형태와 문양을 본떠 만든 소중한 또 하나의 고려시대 백자 매병인 것입니다.
백자 병은 목이 가늘고 몸체는 풍만한 형태로 곡선미가 돋보입니다. 목에서 어깨로 넘어가는 부분에는 음각으로 여의두무늬를 새겼고 몸체에 화려한 연꽃무늬를 넣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백자 조각이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발견되어 생산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부안 유천리는 화려하면서도 품위 있는 고려 백자의 산지로 유명합니다. 1300도 이상 고온에서 굽는 조선시대 백자와는 달리 고려시대 백자의 태토는 2차 점토입니다. 따라서 고려 백자는 다소 연질(軟質)로 아백색(牙白色)을 띠며 부드러운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 같은 백자들은 청자의 시대라 불리는 고려시대 도자문화를 더욱 다채롭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