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둔황[敦煌]에서 10세기경에 제작된 그림입니다. 한 인물이 층층이 쌓은 두루마리 묶음을 등에 짊어진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언뜻 보면 남루한 차림의 떠돌이 행각승(行脚僧)인 것 같습니다. 스님들이 사용하는 불자(佛子)를 들고, 머리에는 성글게 짠 챙이 넓은 모자를 썼으며, 통이 좁은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주위에서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발아래 붉은빛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바로 곁에는 호랑이가, 머리 위에는 작은 부처가 호위하듯 보조를 맞추며 함께 왼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대체 누구일까요?
여행하는 승려, 둔황, 10세기, 종이에 채색, 49.8×28.6cm, 본관4018
유사한 그림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과 같은 유형의 그림은 전 세계적으로 12점이 존재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외에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3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4점, 영국박물관에 2점, 러시아 예르미타시박물관에 1점, 일본 덴리도서관[天理圖書館]에 1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모두 둔황에서 발견된 작품으로, 9~10세기에 제작된 것입니다. 세부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두루마리를 짊어지고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은 동일합니다. 재질과 표현상 특징으로 보면, 기메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2점은 비단에 그렸고 길이와 폭이 각각 80cm, 50cm 내외로 상대적으로 크고 표현도 섬세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포함한 나머지 10점은 모두 종이에 그린 그림입니다. 화면은 길이와 폭이 각각 50cm, 25cm 내외로 상대적으로 작으며, 표현도 다소 거칠고 단순합니다.
현장법사상, 일본 가마쿠라시대 14세기, 비단에 채색, 135.5×90cm,
도쿄국립박물관, Image : TNM Image Archives
현장법사와의 연관성
20세기 초 둔황에서 가져온 이와 같은 그림이 처음 알려졌을 때 학자들이 주로 관심을 가진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물이 경전으로 보이는 두루마리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하는 모습을 표현한 점입니다. 이처럼 경전을 짊어지고 여행하는 이미지에서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구법승(求法僧),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 602?~664)을 떠올렸습니다. 일본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0~1333] 그림이나 후대 탁본에 묘사된 현장의 모습은 이러한 그림 해석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습니다. 여기에서 현장은 이 그림에 등장하는 행각승처럼 경전으로 가득 찬 책 상자를 짊어지고 한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행하는 승려>는 근래에도 실크로드나 구법승을 주제로 한 국내 학술대회나 행사 홍보물에 종종 등장하고 있어, 이런 그림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구법승을 연상하게 함은 분명합니다.
주인공에 대한 다양한 해석
그런데 현장을 묘사한 그림과 <여행하는 승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현장은 땅을 디디며 걸어가고 있지만 행각승은 구름을 타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는 현장에게 없는 호랑이를 곁에 두고 있으며, 부처도 그를 지켜 줍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며 학자들은 그림 주인공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티베트 불교에서 숭배한 18명의 나한(羅漢)을 그린 그림에서는 <여행하는 승려>와 매우 닮은 인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달마다라(達磨多羅, Dharmatrāta)로, 책 상자를 메고 있고, 호랑이를 동반하고 있으며, 위쪽에는 작은 부처가 등장합니다. 공통점이 많기는 하지만 달마다라 도상(圖像)이 정립된 것은 13세기로, 이를 근거로 <여행하는 승려>를 달마다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달마다라의 도상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여행하는 승려>와 같은 그림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요.
그림의 주인공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변문(變文)을 구연(口演)하는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짊어지고 가는 두루마리는 경전이 아니라 변문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보조물로 사용한 두루마리 그림[畫卷]으로 봅니다. 변문은 20세기 초 둔황 막고굴(莫高窟)의 장경동(藏經洞)에서 발견되면서 알려진 중국 중세 문학의 한 장르입니다. 불교 경전이나 역사 기록을 대중적 이야기로 풀어낸 글로, 운문(韻文)과 산문(散文)이 번갈아 등장하며 구어체를 담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변문에 담긴 이야기를 대중에게 들려줄 때 그림을 활용하곤 하였습니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9세기 둔황에서 제작된 화권(P.4524)은 이러한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입니다. 앞쪽에는 <항마변상(降魔變相)>이 그려져 있는데, 노도차(勞度差)와 부처의 제자인 사리불(舍利弗)이 신통력 경합을 펼치는 이야기가 여러 장면에 걸쳐 묘사되어 있습니다. 화권 뒷면에는 각 장면이 시작하는 곳마다 그림과 같은 주제를 다룬 『항마변문(降魔變文)』의 해당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변문을 공연하는 이가 이러한 그림을 청중을 향해 들고 서서 이야기를 들려줄 때, 두루마리 뒷면에 적힌 내용을 참고하도록 한 것입니다.
지식층이 아닌 서민층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 예를 들어 대중을 상대로 공연을 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활동은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면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불교 포교 활동에는 많은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는 오락이나 볼거리가 동반되었고, 이러한 맥락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일은 도성의 사찰뿐만 아니라 지방의 마을 단위로도 진행되었고, 이때 여러 지역을 다니며 활동하는 승려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해석으로는 인물 주위에 등장하는 구름, 호랑이, 작은 부처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일종의 오락을 제공하는 인물을 그림의 독립된 주제로 표현했을지 의문이며, 그렇다 하더라도 그 그림의 용도가 모호합니다.
그림에 적힌 이름 ‘보승여래’
행각승의 정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은 다름 아닌 일부 그림에 적혀 있는 ‘보승여래’라는 부처의 이름입니다. 현존하는 12점의 행각승 그림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6점에 이러한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은 왼쪽 상단에 적힌 글씨가 일부 지워지긴 했지만 “나무보승여래불(南無寶勝如來佛)”이라고 적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여행하는 승려(세부), 둔황, 10세기, 종이에 채색, 49.8×28.6cm, 본관4018
보승여래는 여러 한역 경전에 등장합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한역된 『금광명경(金光明經)』, 『불설불명경(佛說佛名經)』과 8세기에 한역된 『시제아귀음식급수법병수인(施諸餓鬼飮食及水法幷手印)』, 『유가집요구아난다라니염구궤의경(瑜伽集要救阿難陀羅尼焰口軌儀經)』 등의 밀교 경전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경전에는 보승불의 이름을 부르거나 들으면 죽은 뒤 고통스러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즐거움으로 가득 찬 천상에 태어나는 것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경전 이외에 보승불 숭배에 대한 일화도 전합니다. 이는 둔황과 가까운 서역이나 그 인근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6세기 문헌인 『명승전(名僧傳)』에는 우전(于闐, 현재의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호탄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불교 사원인 찬마가람(讚摩伽藍)에 보승상(寶勝像)이 모셔져 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송고승전(宋高僧傳)』 과 『불조통기(佛祖統紀)』에는 당 숙종(肅宗, 재위 756~762)이 영무(靈武)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을 때, 항상 보승불을 반복해서 부르는 하란산(賀蘭山, 현재의 중국 닝샤[寧夏] 지역)의 무루(無漏)라는 승려를 만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보승여래 신앙이 형성되고 그를 숭배하는 활동이 둔황과 멀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 적힌 보승여래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일부 학자들은 행각승이 보승여래라고 주장하지만, 승려와 부처가 동일시될 수 없다고 본 학자들은 상단에 작게 표현된 부처가 보승여래라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행각승을 부처의 화신(化身)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일부 행각승 그림에 글씨를 써 넣을 수 있는 직사각형 구획이 두 군데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존하는 행각승 그림에 표현된 승려는 모두 입을 약간 벌리고 있어 마치 부처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나의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보승여래’는 행각승이 염불하는 부처의 이름이고 원래는 행각승의 이름도 그림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행각승 도상이 유행하면서 행각승이 점점 신적인 존재로 인식되었고, 그 결과 행각승이 보승여래의 화신으로 여겨지며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여행하는 승려, 둔황, 10세기, 종이에 채색, 41.0×29.8cm,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 1919,0101,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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