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할 때 하늘을 진동하는 소리를 낸다.’ 하여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조선 선조 때 병기(兵器) 제조 등을 관장하는 군기시(軍器寺) 화포장(火砲匠)이었던 이장손(李長孫)이 발명한 화약 무기입니다.
당시 포탄은 화포에서 발사되어 적의 성(城)이나 성문(城門)을 공격하는 귀갑차(龜甲車)같은 구조물을 파괴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비격진천뢰는 오늘날과 같이 신관(信管, 발화) 장치가 있어 목표물까지 날아가서 폭발하는 폭탄으로, 조선시대 병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입니다.
비격진천뢰, 조선, 지름 20.9cm, 중량 10.2kg, 진주231
기록으로 전하는 비격진천뢰 구조
비격진천뢰의 구조는 조선 후기 병기서(兵器書)인 『융원필비(戎垣必備)』,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쇠로 주조해 만들며, 형태는 둥근 공 모양으로 속이 비어 있습니다. 개철구(盖鐵口)를 열고 내부에 화약과 빙철(憑鐵, 철편)을 채운 다음, 가운데에 발화장치인 죽통을 넣습니다. 죽통 안에는 목곡(木谷)이라는 것이 있어 여기에 도화선을 감는데, 감는 횟수에 따라 폭발 시간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 독특한 발화장치는 다른 화기(火器)에서 볼 수 없는 비격진천뢰만의 특징입니다.
『융원필비』, 조선, 33.3×21.0cm, 신수5995
중국에도 비격진천뢰와 비슷한 진천뢰(震天雷)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외형상 비슷할 뿐 비격진천뢰처럼 폭발 시간을 조절할 수 없으며, 진천뢰를 화포에서 발사하지 않고 손으로 던져서 공격하는 무기입니다.
완구에서 발사하는 비격진천뢰
비격진천뢰의 발사 방법은 완구(碗口)라는 화포에 장착한 후, 비격진천뢰에 있는 도화선에 먼저 불을 붙이고, 이후에 완구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 발사합니다. 혹시나 도화선 불이 꺼질 경우를 대비하여, 완구에는 두 개의 도화선 구멍을 뚫었습니다.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는 완구는 크기에 따라 대·중·소완구로 구분되며, 비격진천뢰가 없는 경우에는 돌을 둥글게 다듬어 만든 단석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1 비격진천뢰, 조선, 지름 19.0cm, 김해16613
2 단석, 조선, 지름 33.0cm, 진주6329
3 중완구, 조선, 길이 64.0cm, 완지름 27.7cm, 보물, 진주132
기록에 전하는 비격진천뢰
비격진천뢰에 대한 임진왜란 때 기록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징비록(懲毖錄)』, 『향병일기(鄕兵日記)』, 『학봉집(鶴峰集)』, 『정한위략(征韓偉略)』 등의 사료(史料)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징비록』에는 ‘비격진천뢰를 성안에 대고 쏘니 객사 마당에 떨어졌다. 적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서로 모여들어 구경했다. 조금 있다가 폭탄이 저절로 터져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폭음이 나면서 철편이 무수히 흩어지니, 여기에 맞아 바로 죽은 자가 삼십여 명이요, 직접 맞지 않았어도 놀라서 쓰러지는 자가 많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김해(金垓, 1555~1593)의 『향병일기』에는 ‘왜적을 토벌하는 방책으로 비격진천뢰를 능가하는 것이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비격진천뢰가 얼마나 위력적인 무기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류성룡, 『징비록』, 조선, 32.4×20.7cm, 구9364
김해, 『향병일기』, 조선, 30.1×22.3cm, 진주8348
무쇠로 만든 비격진천뢰는 과연 폭발이 가능했을까?
‘무쇠로 만든 비격진천뢰가 적진에서 과연 폭발이 가능했을까?’ 이에 대한 의문은 전산화 단층 엑스선 촬영장치(CT)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비격진천뢰 CT 사진
전산화 단층 엑스선 촬영장치(CT) 사진과 같이 비격진천뢰 단면에 많은 기공(氣孔)이 분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기공은 충격에 약한 주물의 강도를 더욱더 약화시켜 비격진천뢰가 쉽게 폭발하도록 만든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창의성과 과학적 지혜가 담겨 있는 비격진천뢰는 조선시대 무기 제작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