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검파형 동기 - 칼 손잡이를 닮은 청동기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기원전 5~4세기경을 전후로 하여 요령식 동검 문화(遼寧式銅劍文化)와 한국식 동검 문화(韓國式銅劍文化)로 나누어집니다. 날이 곡선인 청동검을 비롯해서 투겁창, 화살촉, 부채모양 도끼, 끌 등 비교적 단순한 종류의 청동기가 특징인 요령식 동검 문화에 비해 한국식 동검 문화는 매우 화려합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청동기인 한국식 동검을 비롯하여 투겁창, 꺾창과 같은 무기뿐만 아니라 거울, 방울 등의 의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의기와 그에 새긴 정교한 무늬를 볼 때 당시 한반도의 청동기 제작 기술이 최고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검파형 동기는 한국식 동검 문화의 다양한 의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검파(劍把)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 형태가 칼 손잡이를 닮았습니다.

귀한 청동기가 무덤 속에 한가득

2015년 전북 군산 선제리 농가 창고 신축부지 발굴 과정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려 40년 만에 검파형 동기를 확인한 것인데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진 것은 2017년 3월 보존처리를 마친 뒤였습니다. 이전까지 검파형 동기는 단지 세 유적에서만 확인되었습니다. 대전 괴정동(1967년), 아산 남성리(1976년), 예산 동서리(1978년) 유적이 바로 그곳입니다. 세 유적은 모두 정식 발굴조사가 아니라 우연히 발견되어 수습 조사를 한 경우였기에 군산 선제리에서의 발견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검파형 동기의 출토 위치를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제리 검파형 동기는 무덤 바닥 가운데 부분에서 한국식 동검과 함께 부러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군산 선제리 유적은 앞서 발견한 세 유적과 마찬가지로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입니다. 이곳에서 검파형 동기 3점뿐만 아니라 한국식 동검 8점, 청동도끼 1점 등 많은 청동기를 발견했습니다. 청동기 문화라고 하면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을 떠올리지만 기원전 5~4세기경부터 한반도에서는 지배자의 무덤으로 돌무지널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이전 시대에 비해 무덤을 깊이 파고 나무 관을 넣은 뒤 돌로 채워 덮은 것입니다. 하나의 무덤 안에 귀한 청동기를 가득 묻은 것이 특징으로, 더욱 강력해진 지배자의 위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산 남성리 돌무지덧널무덤 출토품, 초기철기시대

아산 남성리 돌무지널무덤 출토품, 초기철기시대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검파형 동기의 앞쪽에는 위아래에 실로 꼰 듯한 모양의 고리를 달았고 테두리를 따라 점과 선을 이용한 기하학적 무늬를 둘렀습니다. 이러한 무늬는 함께 발견한 다른 청동제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뒤집어보면 반대쪽은 빈 대나무 속처럼 비어있으며 어딘가에 매달 수 있도록 고리를 달았습니다. 좀 더 이른 시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대전 괴정동 유적 검파형 동기는 위아래에 각각 하나의 고리를 달았지만 아산 남성리와 예산 동서리 유적의 검파형 동기는 위쪽에 2개, 아래쪽에는 1개의 고리를 달았습니다.

검파형 동기 뒷면, 아산 남성리 유적, 초기철기시대, 길이 25.4cm, 신수3491

검파형 동기 뒷면, 아산 남성리 유적, 초기철기시대, 길이 25.4cm, 신수3491

반드시 3점씩 발견되는 것도 특이한 점 중 하나입니다. 또한 길이를 25cm 내외로 규격화한 것으로 보아 특정한 위치에 달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지만 함께 발견되는 청동거울, 방패형 동기와 마찬가지로 의례에서 지배자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옷에 달았을 가능성도 커 보입니다. 현재는 녹이 슬어 푸른빛을 띠고 있지만 당시에는 황색을 띠며 반짝거려 착용한 지배자의 위상을 한껏 높여주었을 것입니다.

검파형 동기에 새긴 무늬

의례와 관련이 있음은 아산 남성리 유적과 예산 동서리 유적 검파형 동기에 새긴 무늬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청동기에는 대부분 기하학적 무늬를 새기지만 드물게 사실적인 무늬를 새긴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농경문 청동기를 들 수 있고 검파형 동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산 남성리와 예산 동서리 검파형 동기에는 각각 사슴무늬와 손무늬를 새겼습니다. 시베리아에서 사슴무늬는 주술자의 힘이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손무늬는 주술자의 기이한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제사장이자 지배자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검파형 동기에 새긴 문양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검파형 동기의 사슴 문양, 아산 남성리 유적, 초기철기시대, 길이 25.4cm, 신수3491

검파형 동기의 사슴 문양, 아산 남성리 유적, 초기철기시대, 길이 25.4cm, 신수3491

칼 손잡이를 닮은 청동기

검파형 동기는 칼의 손잡이를 닮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칼 손잡이를 닮은 무늬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유적이 있는데요. 바로 바위그림입니다. 바위그림에는 주로 동심원과 방형의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겼는데 방형의 모양이 검파형 동기와 비슷합니다. 동심원이 해를 상징한다면 방형의 기하문은 신 또는 검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당시 검은 지배자를 상징하는 위세품으로, 무덤에 껴묻거리로 넣고 고인돌 덮개돌이나 묘역을 나타내는 돌에 새기기도 하였습니다. 여수 오림동 유적 바위그림을 보면 사람보다 더 크게 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정말 의도적으로 칼 손잡이를 본떠 청동기를 만들고 바위에 새긴 것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검’이 청동기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어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말 칼의 손잡이를 닮은 청동기를 만들고 의례를 지냈던 바위에 새겨 넣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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