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계림로 14호분은 1973년 미추왕릉 지구 정화사업을 하던 중 발굴된 무덤으로, 규모에 비하여 수준 높은 부장품이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장식보검(6세기, 옛 지정번호 보물 제635호)은 신라의 문화재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태나 제작기법 때문에 발굴 당시부터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검은 누금세공기법과 보석을 박아 넣은 감장기법으로 만들었는데, 보검의 형태나 제작기법 등으로 보아 6세기대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일반적으로 제작지는 이란 혹은 중앙아시아로 추정합니다.
보검의 장식은 붉은 홍마노(紅瑪瑙)와 회청색 보석으로 추정해 왔으나 이는 육안에 의한 판단이었습니다. 이 장식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성분 분석이 필수적입니다. 이에 보검을 장식한 감장 물질 및 누금 재료를 엑스선 형광분석법 등 비파괴적인 방법으로 분석하였고, 그 재료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밝힐 수 있었습니다.
계림로 보검, 경주 계림로 14호 무덤, 6세기, 전체 길이 36.8㎝, 최대 폭 9.05㎝, 보물, 국립경주박물관, 경주42429
보검 장식에 감장된 물질은 무엇일까?
보검 장식의 감장 물질 분석에 사용한 장비는 에너지 분산형 분광기 부착 주사전자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y with energy dispersive spectrometer, SEM/EDS), X-선 회절분석기(X-ray diffractometer, XRD), 자외-가시광 분광분석기(Ultraviolet-visible spectrophotometer, UV-VIS)입니다.
SEM/EDS는 나트륨(Na), 칼륨(K), 마그네슘(Mg), 산소(O) 등과 같은 경원소(輕元素) 분석이 가능하여 비금속(非金屬) 산화물(酸化物)의 성분 분석에 유용하고, 금알갱이를 붙인 부위처럼 매우 작은 부분에 대한 분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SEM/EDS 분석만으로는 유리인지 혹은 광물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광물의 결정성 물질이 X-선을 회절(回折)시킨다는 물리적인 성질을 이용한 XRD 분석이 필요합니다. 유리는 비결정질(非結晶質)이기 때문에 X-선을 회절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XRD 분석으로 유리나 광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UV-VIS 분광기로 자외선 및 가시광 영역에서 광물이 흡수하는 특정 파장(波長)의 빛을 찾아내어 광물의 종류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분석 방법으로 계림로 보검에 감장된 물질의 종류가 유리와 석류석(石榴石, garnet)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장된 보검 장식 중에서 크기가 비교적 큰 원형과 타원형 물질은 유리이고, 태극무늬나 나뭇잎무늬 등과 같이 크기가 작은 무늬는 석류석을 가공한 것입니다. 석류석은 종류가 다양한데, 계림로 보검에는 로돌라이트(rhodolite)를 주로 사용하였고, 일부 헤소나이트(hessonite)도 함께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로돌라이트는 크기가 3캐럿 이상 되는 것이 매우 드물고 귀해 고가의 보석으로 여겨졌다고 하는데, 계림로 보검에 사용한 석류석(로돌라이트)은 주로 2캐럿 정도 되는 크기의 보석을 가공하여 태극무늬를 만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반적인 석류석은 다양한 산출양상(産出樣相)을 보이나 보석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석류석의 산출은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에 석류석의 산지에 관한 정보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정보는 곧 제작지나 유통 경로 등을 밝힐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후 각 산지별 석류석에 관한 성분 분석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된다면 충분히 산지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보검의 누금 재료 분석
누금기법 또는 누금세공은 금속 표면에 금실을 붙여서 장식하는 세선세공(細線細工, Filigree)과 금속 표면에 금알갱이를 붙여서 장식하는 세립세공(細粒細工, Granulation)의 개념을 모두 포함하는 금속 장식기법입니다. 누금세공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세선(細線)과 세립(細粒)을 제작하는 과정의 정밀성과 더불어 금속판에 이를 붙이는 고차원의 땜 기술입니다.
금알갱이를 바탕 금속에 붙일 때는 땜납을 써서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입자와 판 사이의 빈 공간을 땜납으로 메우는데, 일반적으로 금알갱이를 붙이는 방법으로는 세 가지가 알려져 있습니다. 첫째는 땜납법의 일종인 금납법, 둘째는 구리염을 이용한 구리 확산법, 셋째는 아무것도 가하지 않은 융접법 입니다.
계림로 장식보검의 금알갱이는 크기와 형태가 매우 균일하며 대, 중, 소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형 금알갱이는 크기가 약 240μm(0.24mm), 중형은 약 150μm(0.15mm), 소형은 약 130μm(0.13mm)입니다. 특히 크기의 편차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했던 대형 금알갱이의 경우에도 약 2μm(0.002mm) 밖에는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매우 균일합니다.
보검 장식의 X-선 투과 사진
금알갱이의 크기
그리고 보검의 금판, 금실, 금알갱이의 성분 조성은 XRF 분석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금판의 평균 함유량은 금(Au) 78.8wt%, 은(Ag) 17.6wt%, 구리(Cu) 3.3wt% 이고, 금실은 Au 79.5wt%, Ag 17.4wt%, Cu 3.0wt%이며, 금알갱이는 Au 77.0wt%, Ag 18.0wt%, Cu 4.0wt% 의 평균 함유량을 보였습니다. 즉, 보검의 금판, 금실, 금알갱이의 성분 조성은 금, 은, 구리 세 종류의 금속이 합금된 물질이며, 성분 조성도 거의 비슷합니다.
보검은 합금 금속이기 때문에 순수한 금의 녹는점인 1064℃ 보다 훨씬 낮은 온도인 1000℃ 미만(약 980℃)에서도 금속이 녹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땜이나 다른 매개물(媒介物)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순간적으로 고온을 가하면 금알갱이를 붙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SEM 이미지 관찰에서도 땜의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어 융접법(融接法)으로 붙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금알갱이 표면에서 나뭇가지 모양[樹枝狀] 조직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순수한 금속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합금된 물질의 특징입니다.
보검 장식 금알갱이 표면의 나뭇가지 모양 조직 SEM 이미지
금알갱이의 SEM 이미지(확대)
한반도 출토 누금세공품의 접합 방법과 비교
지금까지 분석된 한반도 출토 누금세공품의 접합방법을 살펴보면 금과 은의 합금 재료를 사용한 금납법으로 붙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경주 보문동 합장분 출토 굵은고리 금귀걸이, 호암미술관 소장 가는고리 금귀걸이와 굵은고리 금귀걸이,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출토 금제풍탁 등의 금알갱이 접합에 금과 은을 합금한 재료를 사용하였습니다.
반면에 계림로 장식보검은 아직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되지 않은 누금기법으로 만든 최초의 사례입니다. 특히 보검의 제작지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더욱 주목됩니다. 추후 더욱 많은 누금세공품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 자료를 축적한다면 계림로 보검의 제작지를 확실하게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