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얼굴조각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로프노르(羅布泊) 지역 샤오허(小河) 묘지에서 많은 문화재가 출토되었습니다. 샤오허 묘지에서 발견한 풀로 짠 바구니, 사람 형태의 막대, 얼굴 조각, 가죽 신발, 모자 등은 청동기시대의 생활풍속과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이 가운데 사람의 얼굴을 본떠 작게 만든 얼굴 조각[木彫人面像]이 눈길을 끕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샤오허 묘지에서 출토된 얼굴 조각이 있습니다.

얼굴 조각 얼굴 조각,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 기원전 17~15세기, 나무 등, 높이 7.7cm, 폭 5.3cm,
1916년 구하라 후사노스케 기증, 본관4138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와 출토품

얼굴 조각이 발견된 샤오허 묘지는 콘체 강(孔雀河) 중류에서 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사막 지대에 위치하며, 동쪽의 누란고성(樓蘭古城)과는 약 170km 떨어져 있습니다. 묘지의 전체 면적은 2,500㎡이고, 가운데 목책을 기준으로 남구와 북구로 구분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샤오허 묘지 출토품은 1910~1911년 오타니 탐험대가 차르클리크[若羌]에서 현지인들[amban]에게 구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오타니 탐험대가 지역의 현령이 가지고 있는 옛 물건[古物]을 구입했고, 오타니 탐험대를 위해 수차례에 걸쳐 지역 사람들이 보물을 찾으러 황무지에 갔다고 합니다. 샤오허 묘지의 얼굴 조각을 비롯하여 오타니 탐험대가 입수한 문화재 일부는 일본의 니라쿠소(二樂莊)에 잠시 보관되었다가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에 기증된 후, 1945년 국립박물관이 건립되면서 새 박물관으로 완전히 이관되었습니다.
샤오허 묘지의 조사와 관련해서는 1934년 스웨덴 고고학자 폴케 베리만(Folke Bergman, 1902~1946)의 활동이 주목됩니다. 베리만이 샤오허 묘지를 조사할 당시, 이미 수차례에 걸친 도굴로 인해 무덤 곳곳에 문화재가 흩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1930년대 샤오허 묘지의 도굴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오타니 탐험대가 현지인에게 문화재를 입수하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샤오허 묘지는 베리만의 조사 이후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가, 1997년 베리만의 보고서가 중국어로 출판되면서 중국 고고학자들의 이목을 끌게 됩니다. 2000년 중국 고고학자들은 GPS를 활용하여 샤오허 묘지의 위치를 확인하였고, 2002~2005년에는 신장문물고고연구소(新彊文物考古硏究所)가 총 167기의 무덤을 발굴하였습니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로프노르 지역의 매장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재가 출토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샤오허 묘지 출토 얼굴 조각

샤오허 묘지 출토 얼굴 조각의 높이는 7.7cm, 폭은 5.3cm, 코의 길이는 3.3cm 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정수리에서 눈구멍 위까지 1.3cm, 눈구멍에서 코까지 4.0cm, 인중에서 턱까지 2.4cm로, 눈구멍에서 코까지의 비례가 샤오허 묘지에서 출토된 다른 얼굴 조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편입니다. 얼굴 조각의 표면에는 가죽이 붙어 있고, 그 위에 붉은색이 칠해져 있습니다. 현재 코끝과 콧방울 부분에 박락이 일어나 나무 표면이 노출된 상태입니다. 반원형처럼 휘어져 튀어나온 눈두덩과 작은 눈구멍, 높이 솟은 코와 노출된 이빨을 특징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콧등 위로는 7줄의 가로선이 지나며 이빨의 개수는 모두 6개입니다.
샤오허 묘지 발굴보고에 따르면 얼굴 조각의 눈은 흰색 구슬로 만들었고, 이빨은 새 깃털의 줄기인 깃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과학조사 결과, 눈은 마그네슘(Magnesium) 함유량이 높은 활석(滑石) 혹은 해포석(海泡石)이고, 이빨은 인산칼슘(Calcium Phosphate)이 주성분인 뼈나 상아(象牙)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마와 턱에는 작고 얇은 주석판(朱錫板)이 붙어 있습니다. 뒷면에는 나무 표면 위를 가죽으로 싼 모습이 확인되며, 발굴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격(治格)’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메모 위에는 1개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고, 상부 양쪽에도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얼굴 조각 앞면 얼굴 조각 앞면

얼굴 조각 뒷면 얼굴 조각 뒷면

얼굴 조각 뒷면의 구멍은 상(像)을 고정시키기 위해 뚫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뒷면과 측면의 구멍을 이용하여 어딘가에 걸거나 부착하였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형태의 얼굴 조각을 특수한 상황에서 사용한 의식구[法器]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즉 어떤 의식을 거행할 때 얼굴에 가면처럼 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굴 조각의 크기가 작아 실제로 착용했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얼굴 조각의 과장된 이목구비 가운데 가장 강조된 부분은 코입니다. 안면의 비례로 볼 때, 코를 지나치게 높게 표현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얼굴 조각의 형태는 샤오허 묘지 출토 사람 형태의 막대에서도 확인됩니다.

얼굴 조각 윗면얼굴 조각 윗면

사람 형태의 막대 윗면 사람 형태의 막대 윗면

사람 형태의 막대를 보면 상단의 얼굴 부분에 코가 크게 돌출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이 지역 인종의 특징을 알려주기 위해 이처럼 코를 과장하여 만든 것은 아닙니다. 고대인들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를 호흡의 유무(有無)라고 생각하고, 호흡에 사용하는 코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여겼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얼굴 조각에서 코를 과장되게 표현하여 그 기능을 강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커다란 코와 함께 콧등 위를 지나는 7줄의 털실[線繩]도 주목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샤오허 지역의 문화권에서 숫자 7과 관련한 사례들이 많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묘지의 나무 기둥에 7줄의 가로무늬를 새겼거나, 샤오허 묘지 부근 구무거우 타이양(太陽) 묘지에 7개의 나무 말뚝이 있는 것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새로운 문화재가 출토되고 관련 연구가 지속된다면, 샤오허 지역의 문화권과 숫자 7에 대한 의문도 풀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샤오허 묘지 출토 얼굴 조각은 실크로드 남로(南路)에 정착한 최초의 유목민이 남긴 문화재라는 점에서 로프노르의 선사문화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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