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수행기(繡行記)』 - 1833년 공청우도 암행어사 황협(黃𥞵)의 보고서 : 허문행

『수행기』, 조선 1840년, 종이에 먹, 25.3×14.0cm, 구561

『수행기』,
조선 1840년, 종이에 먹, 25.3×14.0cm, 구561

『수행기』는 1833년(순조33) 공청우도(公淸右道, 오늘날 충청남도) 암행어사로 활동한 황협(黃𥞵, 1778~1856)이 남긴 보고서를 필사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19세기 초반 공청우도 관리들의 업적과 잘못을 비롯하여 백성의 생활상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남아 있습니다. 책 제목에서 ‘수(繡)’는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또 다른 이름인 ‘수의(繡衣)’를 뜻합니다. 제목 옆 ‘경랍(庚臘)’이라는 글씨와 책 안의 “경자년 납월 초칠일(庚子臘月初七日)”이라는 기록으로 1840년(헌종6) 무렵 편집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황협, 55세에 암행어사가 되다

『수행기』를 남긴 황협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황협은 1825년(순조25) 47세에 이르러서야 문과에 급제해 벼슬살이를 시작했고 이후 공충도사(公忠都事), 홍원현감(洪原縣監), 홍문관(弘文館) 수찬(修撰) 등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지냈습니다. 1832년(순조32) 11월에는 비변사(備邊司)로부터 암행어사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추천을 받습니다.
황협은 55세인 1833년 1월 7일 임금으로부터 공청우도 암행어사로 삼는다는 봉서(封書) 1통, 어사의 임무를 적은 사목책(事目冊) 1통, 마패(馬牌) 1개, 유척(鍮尺) 2개를 받았습니다. 숭례문을 나와 봉서를 열어보니 “1월 10일 새벽에 신분을 숨기고 출발하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습니다. 황협은 공청우도 27개 고을을 돌아다니며 수령(守令)의 폐단을 적발하고 백성의 생활을 살폈으며, 6월 10일 순조에게 결과를 보고하는 문서인 「서계(書啓)」와 「별단(別單)」을 올렸습니다.

『수행기』의 구성과 내용

『수행기』는 「개요」, 「순조의 밀지(密旨)」, 「서계」, 「별단」, 「이조와 병조의 회계(吏兵曹回啓)」, 「권농윤음(勸農綸音)」 등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행기』 제2~3면, 조선 1840년, 종이에 먹, 25.3×14.0cm, 구561

『수행기』 제2~3면,
조선 1840년, 종이에 먹, 25.3×14.0cm, 구561

연번 구분 내용
1 「개요」 암행어사 임명 과정 및 돌아온 후 보고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
2 「순조의 밀지」 황협을 공청우도 암행어사로 임명한 이유와 당부하는 내용
3 「서계」 공청우도의 전‧현직 관원 51명에 대한 업무 능력 평가
4 「별단」 백성의 생활상과 폐단, 모범이 되는 이들의 포상에 대한 내용
5 「이조와 병조의 회계」 「서계」에 실린 관원들에 대한 이조와 병조의 처리 결과 (문관은 이조에서, 무관은 병조에서 처리)
6 「권농윤음」 1836년(헌종2) 1월 임금이 내린 농사를 권장하는 글

황협의 기록 중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순조의 밀지」입니다. 순조는 밀지에 “공충도에 가뭄이 들어 백성이 힘들어하고 있으니, 수령의 비리와 그들이 진휼(賑恤)을 제대로 시행하는지 자세하게 살피라”고 적었습니다. 밀지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공식 역사 문헌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당시 순조가 어떻게 정치를 주도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서계」와 「별단」에서는 19세기 초반 공청우도의 정치와 백성의 생활상을, 「이조와 병조의 회계」에서는 조선시대 인사 제도의 운영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중 공충도 중군(中軍) 최한중(崔漢衆)의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황협이 「서계」에서 “전 감영 중군 최한중은 부임 초기 군량미[餉米] 1백 석으로 돈놀이를 했으며 이는 나라의 법을 어긴 것”이라고 보고하자, 병조는 「서계」를 접수하고 5일 후 최한중을 의금부로 잡아와 조사할 것을 청했습니다. 최한중은 의금부에서 조사를 받고 장 90대, 2년간 황해도 유배, 5년간 관직에 임용하지 않는 엄중한 처분을 받았습니다.
『수행기』 마지막 부분에 있는 「권농윤음」은 1836년 임금이 전국 백성에게 농사를 권장하며 내린 글로, 황협의 암행어사 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수행기』의 특징과 자료적 가치

암행어사를 지낸 이들이 남긴 기록에는 서계, 별단, 공문, 일기 등이 있습니다. 『수행기』는 서계, 별단에 해당하며 암행어사의 파견 과정, 활동, 어사의 보고에 따른 인사 처리 등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자료와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이 책이 어떤 이유로 황협이 암행어사로 다녀오고 7년이 지나서야 편집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에 실린 기록보다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고, 조선시대 암행어사 제도의 운영 과정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습니다.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국립중앙박물관이(가) 창작한 『수행기(繡行記)』 - 1833년 공청우도 암행어사 황협(黃𥞵)의 보고서 저작물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