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고창 봉덕리의 거대한 분구묘(墳丘墓, 봉분과 같은 분구를 조성한 뒤 매장 시설을 만드는 무덤)에서 화려한 금동신발이 출토되었습니다. 마치 큰 언덕처럼 생긴 고창 봉덕리 1호 분구묘 안에서는 여러 개의 무덤 시설이 확인되었는데, 그중 금동신발이 발견된 4호 석실은 다행히 도굴되지 않은 무덤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 신발은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원래 모습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약 20점의 금동신발 중 가장 온전한 형태입니다. 삼국시대 백제의 전형적인 형태와 문양, 제작 기법이 잘 남아 있는 이 신발은 백제의 중앙에서 제작하여 당시 고창 지방 수장에게 내려준 ‘위세품(威勢品, Prestige goods)’으로 여겨집니다.
금동신발, 고창 봉덕리 1호분 4호 석실 출토, 5세기, 길이 32.7cm, 너비 7.7~10.7cm 보물 제2124호, 국립전주박물관, 전주42605
죽은 자를 위한 신발
언뜻 보기에도 보통 신발보다 훨씬 크고 앞코가 뾰족해 마치 배[船]처럼 생긴 이 신발은 매우 독특한 형태입니다. 크고 넓은 신발 바닥에 18개의 뾰족한 징[Spike]을 박았는데, 오늘날의 축구화 바닥과 비슷합니다. 과연 백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이 신발을 신었을까요?
먼 옛날 삼국시대 사람들은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귀한 물건들을 무덤에 함께 묻었는데 이를 ‘껴묻거리[副葬品]’라고 합니다. 고창 봉덕리 외에도 화성 요리, 공주 수촌리, 무령왕릉, 익산 입점리, 나주 복암리, 신촌리, 정촌, 경주 식리총, 황남대총 등 여러 유적의 무덤에서 50여 점의 금동신발이 출토되었습니다.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은 무덤에 묻힌 사람의 발치에서 발견되었는데, 신발 안팎에는 작은 비단 조각이 붙어 있었습니다. 직물 분석 결과 안쪽에는 세 종류, 바깥쪽에는 두 종류의 직물이 붙어 있었습니다. 추정하건대 두 종류 이상의 직물을 함께 사용한 버선이나 비단 신발을 망자에게 신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깥면에는 ‘금(錦)’이라고 불리는 매우 고운 조직의 직물이 붙어 있었습니다. 『삼국사기』 권33 「잡지(雜志)」 제2 ‘색복(色服)’에서는 “백제, 그 왕은 소매가 큰 자색 도포와 청색 금(錦)으로 만든 바지를 입었으며, 검은색 나직(羅織) 관모에 금꽃 장식을 하였고, 흰 가죽띠에 검은 가죽신을 신었다”라는 『당서(唐書)』의 기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왕과 같이 높은 신분 계층에서 사용하던 고급 직물인 비단이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의 바깥면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또한 오른쪽 신발 안에서는 사람의 뼛조각도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이 금동신발이 죽음 이후 망자의 긴 여정을 함께하기 위한 물건이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의 바닥면
바닥면의 용무늬 장식
바닥면의 인면조신(人面鳥身)과 연꽃무늬로 장식한 징
용과 새, 그리고 사람
고창 봉덕리 출토 금동신발은 가로로 긴 두 개의 넓은 금동판과 바닥판을 서로 이어 붙여 만들었습니다. 긴 금동판을 신발의 발등과 뒤축에서 각각 맞닿게 겹친 후 작은 못 여러 개를 박아 고정하고, 옆판의 아래 끝부분을 ‘ㄴ’ 자로 접어 바닥판과 결합한 형태입니다. 또 발목 깃 부분에 해당하는 금속판을 옆판 안쪽에 덧대어 11개의 못으로 고정했습니다. 발목 깃, 양쪽 옆판 각 1매, 바닥판 이렇게 모두 네 개의 금속판을 서로 결합하여 만든 신발입니다.
신발의 옆면과 바닥을 촘촘한 무늬로 장식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꽃무늬부터 용과 새, 사람 얼굴 등 다양한 장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신발을 장식하기 위해 금동판을 도려내어 여러 무늬를 나타냈는데 이를 ‘투조(透彫)’ 기법이라고 합니다. 옆판 위아래에는 불꽃을 형상화한 무늬가 있고, 그 사이에 거북이 등딱지와 같은 육각형 무늬를 반복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신발 바닥면에도 투조 기법을 사용하여 불꽃무늬와 함께 용, 새, 인면조신(人面鳥身, 사람 얼굴에 새 몸통을 한 상상의 동물)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1.7cm 길이의 징이 박혀 있는 부분을 아름다운 연꽃무늬로 장식하여 신발에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세밀하고 정교한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의 투조 장식 기법은 삼국시대 백제인의 수준 높은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습니다. 화려한 불꽃과 용을 품은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을 통해 약 1,500년 전 고대인들의 뛰어난 기술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