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청화 동정추월무늬 항아리 白磁靑畵洞庭秋月文壺 : 김현정

백자 청화 동정추월무늬 항아리, 조선 18세기, 높이 32.5cm, 입지름 17.4cm, 밑지름 13.5cm, 보물, 건희60

백자 청화 동정추월무늬 항아리, 조선 18세기, 높이 32.5cm, 입지름 17.4cm, 밑지름 13.5cm, 보물, 2021년 이건희 기증, 건희60

‘가을 달빛이 흐르는 호수’를 그린 항아리

가을 달빛이 잔잔히 흐르는 호수. 이 호수는 조선시대에 많은 사람이 가보고 싶어 했던 중국 후난성[湖南省]의 동정호(洞庭湖)입니다. 동정호는 소강(瀟江)과 상강(湘江)이 만나는 곳으로, 이 호수에 가을 달이 뜬 풍경, 곧 동정추월(洞庭秋月)은 이 지역의 아름다운 여덟 경치를 그린 ‘소상팔경(瀟湘八景)’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소상팔경은 조선 왕실과 문인들이 즐기는 그림과 시의 주제가 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고전소설의 배경이 되거나 판소리 사설, 단가 등에 등장하면서 점차 서민에게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동정추월 등 소상팔경의 장면들은 조선 후기 청화백자에도 자주 그려지던 주제였습니다. 이 항아리는 몸통 전체를 화면으로 삼아 발색이 좋은 청화로 항아리 형태와 공간에 맞게 마치 두루마리 그림처럼 동정추월의 경치를 그렸습니다. 절벽 위에 세워진 악양루와 깃발을 묘사하고, 그 왼쪽으로 하늘 높이 뜬 둥근 달과 멀리까지 잇닿은 세 산봉우리를 그렸습니다. 화면 앞쪽에는 배가 닻을 내리고 머무르는 강촌의 경치와 동정호에 한 척의 배가 여유롭게 떠가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 항아리는 입이 벌어지고 몸체 아래쪽이 풍만한 형태로, 떡메처럼 생겨서 ‘떡메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떡메병은 조선 전기와 중기에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렵고, 현재 전하는 작품도 매우 드뭅니다. 꽃을 꽂는 화병이거나 두루마리 종이 또는 그림을 말아놓은 축 등을 보관하는 지통이었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양감이 좋은 풍만한 형태와 푸른 빛이 서린 백자의 맑고 깨끗한 바탕색, 그리고 문인의 담백한 취향에 어울리는 조선식 소상팔경이 시원하게 펼쳐진 그림에서 조선 후기 백자의 품격이 돋보이는 명품입니다.

동경과 선망의 공간

그런데 왜 중국 강남(江南)의 소상지역은 조선 사람들이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던 동경과 선망의 장소였을까요. 중국 강남은 조선에서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지역이었습니다. 가고 싶어도 가보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일찍이 제주도에서 풍랑을 만나 중국 강남지역에 표류했다가 돌아온 최부(崔溥, 1454~1504)가 쓴 『표해록(漂海錄)』과 선조(宣祖, 재위 1567~1608) 이후 성행하던 당시풍(唐詩風)의 영향으로 중국 강남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선망과 동경은 점차 높아졌습니다.
조선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때의 고전소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에서는 주인공 사씨가 동정호에 갔을 때 동정호와 소상지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지역은 요임금의 딸로 순임금의 아내가 된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순임금이 죽자 상강에 몸을 던져 강의 여신이 된 이야기와 임금에 대한 초나라 굴원(屈原, 기원전 345~기원전 278)의 충직함을 간직한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춘향가> 등 판소리에서는 이곳을 아름다운 산수 공간을 대표하는 장소로 노래했습니다. 이처럼 동정호는 옛이야기와 함께 아름다운 이국적 풍경을 떠오르게 하고 낭만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소였습니다.

백자 항아리가 준 여유

이 항아리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유유자적 배를 띄운 달빛 가득한 호수의 정취를 꿈꾸기도 하고, 옛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하지 않았을까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가끔은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하고 충만하게 삶을 변화시킬 상상의 공간을 꿈꿉니다. 눈을 감고 백자 항아리 속 달빛 가득한 그곳, 은빛으로 일렁이는 호수의 풍경을 상상해보아도 좋습니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요.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눈앞에 놓인 잘생긴 백자 항아리가 한결 친근하게 마음에 들어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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