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방형대좌 금동반가사유상 : 권강미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고대 동아시아 불교조각의 걸작이자 삼국시대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국보(옛 지정번호 국보 제78호, 제83호)로 지정된 금동반가사유상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상은 높이가 약 1m에 달하며 우수한 주조기술과 조형적인 아름다움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입니다. 그러나 두 작품을 제외하면 삼국시대 6~7세기대에 유행한 금동반가사유상 대부분은 높이 20~30cm 정도의 소형입니다.

소형의 금동반가사유상 가운데 비현실적으로 가는 몸체에 추상적인 표현으로 눈길을 끄는 작품이 한 점 있습니다. 바로 보물(옛 지정번호 보물 제331호)로 지정된 금동반가사유상입니다. 이 반가사유상의 가늘고 긴 신체의 비례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보살의 종교적 신성성을 더욱 배가시켜 주는 듯합니다.

사각형 받침대 위에 앉아 있는 반가사유상

이 반가사유상은 조선총독부박물관이 1910년 일본인 반도 간페[板東勘平]에게 구입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제작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연화좌 아래에 다시 사각형의 넓은 받침을 둔 특이한 모습으로 인해 흔히 '방형대좌 금동반가사유상' 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반가사유상 정면과 후면

반가사유상 우측과 좌측

반가사유상, 삼국 7세기 전반, 높이 28.5cm, 보물, 덕수2327

반가사유상은 대부분 둥근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반가사유상은 둥근 의자 밑에 다시 높은 연화좌와 바닥면에 사각형의 받침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단이 사각형을 이루고 있어 '방형대좌 반가사유상'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엄밀히 묘사하자면 사각형 받침은 대좌를 받치는 다리, 즉 '대각(臺脚)'이기 때문에 '방형대좌'라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은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각형의 받침으로 인해 방형대좌란 이름이 우리에게는 더 익숙합니다.

삼국시대 반가사유상 중에는 이러한 사례가 흔치 않으나 한반도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일본의 반가사유상 가운데는 이와 유사한 형식의 반가사유상이 종종 눈에 띕니다. 아스카~하쿠호 시대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일본의 금동반가사유상 대부분은 이 상처럼 둥근 의자 아래에 복련의 연화대좌, 다시 이를 받치는 대각의 삼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대각의 모양은 반드시 사각형으로 국한되지는 않으며 육각형, 팔각형 등도 있습니다.

또한 삼국시대 금동반가사유상 가운데 현재 대각이 남아있지 않으나 원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으로는 콧수염이 묘사된 금동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덕수3200)과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의 금동반가사유상 등이 있습니다. 이 두 상 모두 대좌 바닥면에 안쪽으로 홈이 패여 있거나 바깥쪽으로 촉이 튀어나와 있어 원래는 별도의 대각을 설치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단정할 수는 없으나 일본의 사례로 볼 때 한반도에서 제작한 금동반가사유상 가운데 현재는 사라졌으나 원래 대각을 설치했던 상이 더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가사유상, 삼국 7세기 전반, 높이 20.9cm, 덕수3200 반가사유상, 삼국 7세기 전반, 높이 20.9cm, 덕수3200

반가사유상 바닥면 반가사유상 바닥면

극단적인 대조와 추상성이 어우러진 초현실적인 아름다움

이 반가사유상은 몸통과 팔을 비현실적으로 가늘고 길게 표현하여 추상화하였으며, 오른쪽 무릎 밑으로 떨어지는 치마의 주름도 얇은 판을 포갠 듯 도식적입니다.

머리에는 세 면에 보관 장식을 꽂았던 흔적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양 어깨에는 반가사유상으로는 드물게 얇은 천의를 숄처럼 걸쳤는데 천의는 양 팔을 휘감아 대좌 옆으로 자연스럽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상 전체는 하나로 주조하였는데, 상반신은 내부가 동으로 꽉 찬 통주조이고 대좌 아랫부분은 비어있습니다. 정상부의 커다란 보계(寶髻)와 머리 뒷면에는 주조할 때 발생한 기포 자국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습니다. 다소 높게 우뚝 솟은 연화대좌를 자세히 보면 마치 용접한 듯한 이음새 자국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처음 주조할 때 실패한 부분을 밀랍으로 덧대어 다시 주조한 흔적으로 여겨집니다.

신체의 앞면과 뒷면에는 중앙의 연꽃판에서 교차하는 두 줄의 영락장식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수직으로 내린 왼쪽 다리와 오른쪽 대좌 모서리에서는 새끼줄처럼 매듭을 지어 입체적으로 술을 늘어뜨렸습니다. 왼쪽 발을 받든 연꽃 모양의 족좌(足座)는 연화대좌 아래에서 피어오르고 있으며 그 모습이 매우 입체적이고 사실적입니다.

한편, 몸통과 팔을 가늘게 표현한 추상적인 작풍은 호류지[法隆寺] 헌납보물 156호 병인년명(丙寅年銘) 반가사유상과 같은 일본 반가사유상의 형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극단적인 대조와 추상성을 토대로 한 대담한 조형적 변형은 현대 작품인 20세기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조각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아울러 추상적인 표현과 함께 곳곳에서 돋보이는 사실적인 세부 표현은 이 반가사유상을 제작한 장인의 독창성과 뛰어난 창의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군더더기 없는 여윈 신체의 표현은 반가사유상이 처음 만들어진 인도에서 생로병사를 고뇌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과도 잘 어우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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