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백제사에 있어서 역사적인 발굴이 이루어졌으니, 바로 공주 무령왕릉입니다. 무령왕릉에서는 4,600점에 이르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유물 중의 하나가 금제 관 꾸미개[金製冠飾]입니다. 관 꾸미개는 모두 4점 출토되었으며 왕과 왕비의 머리부분에서 각각 2점씩 쌍을 이룬 상태로 확인되었습니다.
왕의 금제 관 꾸미개,
공주 무령왕릉, 백제 6세기, 높이 30.7 cm, 국보
왕비의 금제 관 꾸미개,
공주 무령왕릉, 백제 6세기, 높이 22.6 cm, 국보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금제 관 꾸미개
왕의 관 꾸미개(옛 지정번호 국보 제154호)는 얇은 금판에 인동당초무늬와 불꽃무늬를 기본 문양으로 하여 맞새김하였습니다. 인동당초무늬는 전체적으로 중앙으로 모아지며 올라가고 타오르는 불꽃의 모습을 이룹니다. 관 꾸미개의 전면에는 둥근 모양의 작은 달개가 금실에 매달려 있어 장식성이 강하고 화려합니다. 왕비의 관 꾸미개(옛 지정번호 국보 제155호) 역시 인동당초무늬와 불꽃무늬 장식을 맞새김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의 것에 비해 도식화 되었으며 좌우 대칭구도로 되어 있다는 점, 둥근 달개가 매달려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관 꾸미개 중앙에는 7장의 연꽃잎으로 장식된 대좌 위에 활짝 핀 꽃을 꽂은 화병이 있으며, 그 주위로 인동당초무늬와 불꽃무늬 장식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왕은 검은 비단관에 금꽃을 장식하고, 6품 나솔(奈率) 이상의 관리들은 은꽃을 장식하였습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관 꾸미개는 문헌기록이나 출토위치 등으로 미루어 검은 비단으로 만든 관모에 꽂았던 장식품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비슷하다 전해지는 백제의 복식
관 꾸미개에 대한 내용은 문헌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 고이왕조에는 “2월에 명을 내려 6품 이상은 자주색 옷을 입고 은꽃으로 관을 장식하고, 11품 이상은 다홍색 옷을 입으며 16품 이상은 푸른색 옷을 입게 하였다. 28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소매가 큰 자주색 두루마기와 푸른색 비단 바지를 입고, 금꽃으로 장식한 검은 비단관을 쓰고, 흰 가죽 띠를 두르고, 검은 가죽신을 신고 남당(南堂)에 앉아 정사를 보았다.”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구당서(舊唐書)』를 비롯하여 『신당서(新唐書)』, 『북사(北史)』, 『수서(隋書)』등에서도 확인됩니다. 한편 관을 비롯한 백제의 복식은 고구려와 비슷하다고 전해지는데,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 확인되는 조우관의 전통이 백제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사』에는 “백제의 의복은 고구려와 대략 같다. 조정에서 절을 한다거나 제사를 지낸다면 그 관 양 옆에 날개를 덧붙이고, 전쟁 때는 붙이지 않는다.”라 전합니다.
백제 문화의 보고, 공주 무령왕릉
무령왕릉은 백제 제25대왕 무령왕(武寧王, 재위 501~523년)의 무덤이며, 삼국시대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공이 밝혀진 무덤이기도 합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 중의 하나인 무령왕릉은 1971년 7월 송산리 6호분의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으며 발견 직후 긴급 발굴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공주시 금성동에 위치한 송산리고분군은 백제 왕들의 무덤으로 20여기 이상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현재 7기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이 중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으로 아치형의 천장을 한 무덤방과 무덤길을 갖춘 구조입니다. 무덤 내부에서는 무덤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묘지석을 비롯하여 금과 은으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 금동신발, 청동거울, 중국제 도자기 등 4,600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중 17점이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납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중국 남조와 관련된 것, 신라·왜와의 교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것도 있어 백제 문화의 개방성과 국제성을 잘 보여줍니다.
2 왕비의 금제 일곱 마디 목걸이, 국보, 공주 무령왕릉, 지름 14.0cm
3 공주 무령왕릉 무덤방 북벽, 무덤방의 천장은 아치형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백제 관리들의 관모를 장식한 은제 관 꾸미개
은제 관 꾸미개는 은판을 꽃 모양으로 오려 만든 것으로 부여 하황리, 염창리, 능산리 능안골고분, 나주 복암리, 논산 육곡리, 남원 척문리 등 주로 백제의 굴식돌방무덤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6품 나솔 이상의 관리들은 은꽃으로 장식하였다.”라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과도 일치하는데, 주로 관리들의 관모에 착장되었던 꾸미개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은제 관 꾸미개의 형태는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는데, 주로 좌우 대칭입니다. 얇은 은판을 길게 오려 줄기를 만들고 좌우 곁가지에 꽃봉오리를 오려 만들었는데, 가운데는 조금 접어 V자 모양을 이룹니다. 줄기 양 옆에 달린 가지는 1단과 2단이 있습니다.
부여 능산리 능안골고분군 36호분에서는 은제 관 꾸미개와 함께 역삼각형 모양의 철제 테가 발견되었습니다. 철제 테는 관 꾸미개를 세워 붙일 수 있는 모자의 심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36호분은 남녀가 함께 묻힌 무덤[合葬墓]으로 동편이 남성, 서편이 여성입니다. 가지가 2개 달린 은제 관 꾸미개는 남성 인골 쪽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철제 테에는 천이 여러 겹 감겨 있었는데, 분석 결과 평직물과 나(羅)로 밝혀졌습니다. 문헌기록에 나타나고 있는 나관(羅冠)의 실체를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은제 관 꾸미개,
부여 능산리 능안골고분군 36호분(동편), 높이 20.2cm
은제 관 꾸미개와 철제 테,
부여 능산리 능안골고분군 36호분(동편)
백제 사회의 위계가 반영돼 있어
백제의 관과 관모는 신분을 상징하는 꾸미개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사람의 무덤에서 주로 출토됩니다. 공주 수촌리, 서산 부장리, 천안 용원리, 익산 입점리, 나주 신촌리, 고흥 길두리 유적에서는 금동관모가 출토되었는데, 금동관모는 백제의 영역뿐만 아니라 가야와 일본 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주목됩니다. 금동관모의 형태는 둥근 고깔 모양으로 모자의 뒷부분에 대롱 모양의 장식을 달거나, 앞 또는 뒷부분에 화려한 장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금동관모는 금동신발, 고리자루칼 , 중국 도자기 등과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제 관 꾸미개와 은제 관 꾸미개는 관모에 장착하였던 꾸미개로 여기에는 백제 사회의 위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제 관 꾸미개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금동관모, 익산 입점리, 높이 13.7cm
금동관모, 공주 수촌리, 높이 18.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