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까지 울리는 범종, 땅속의 중생을 제도하다
비교적 규모가 큰 사찰에는 커다란 종을 걸어 놓은 종각이 있습니다. 종각에 걸린 커다란 종이나 전각 내에 있는 작은 종을 일러 모두 범종(梵鐘)이라고 하는데, 범종은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중요한 의식구 중 하나입니다. 불교에서는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범종을 특별히 사물(四物)이라고 하는데, 사물은 부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소리를 통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네 가지 의식구를 말합니다. 법고는 땅 위에 있는 중생을, 목어는 물에 사는 중생을, 운판은 하늘을 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그 소리가 지옥까지 울린다고 하는 범종은 땅속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의식구입니다.
우리나라 범종은 형태나 장식무늬에서 중국이나 일본 종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옥외전시장에 전시 중인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시대인 771년에 완성된 것으로,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대표하는 종입니다. 금속공예실에 전시 중인 <천흥사 종>(天興寺銘 梵鍾)은 이러한 전형적인 한국 종의 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고려시대 동종입니다.
천흥사 종, 고려 1010년, 높이 187 ㎝, 국보
비천상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범종
종을 거는 고리는 용의 모습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용뉴(龍鈕)라고 합니다. 용 옆에 있는 원기둥 모양의 것은 음통(音筒)으로, 5단으로 구획된 표면이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종의 상부와 하부에는 한 줄의 띠를 두르듯이 공간을 나누어 꽃무늬로 꾸몄습니다. 종신(鍾身) 상부에는 네 군데에 사다리꼴 모양의 곽을 만들어 9개의 연꽃봉오리 장식을 덧붙였습니다. 하부에는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撞座)와 하늘을 나는 듯한 비천상을 교대로 배치하였습니다. 또한 종신에 위패 모양을 만들어 그 안에 ‘聖居山天興寺鍾銘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이라는 명문을 양각하였습니다. 이 명문에 의해 천흥사 종이 1010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위패 모양 장식은 고려시대에 새로 나타난 형식이어서 주목됩니다. 천흥사 종은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범종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에는 이처럼 커다란 종 이외에도 높이 40㎝ 내외의 소형 종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 후기에 건물 안에서 진행되는 소규모 의식에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기도 연천군에서 발견된 이 동종은 작은 종이지만 기본적인 한국 종의 양식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종신과 천판이 연결되는 부분을 둘러싼 삼각형처럼 보이는 꽃잎 장식띠는 고려시대 후기에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종신의 연곽 아래에 4개의 당좌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 4구의 천인상이 장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