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미술품의 하나인 고려청자는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작되어 화려하게 동시대를 풍미하였습니다. 고려청자는 중국 자기의 양식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려만의 독특한 미감을 살려 색과 장식기법, 무늬, 그리고 형태 등에서 중국과는 다른 면모를 뚜렷하게 나타냈습니다. 특히 옥(玉)처럼 푸른 빛깔의 ‘비색(翡色)’과 조형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상형청자(象形靑磁)는 실용성과 더불어 감상의 대상으로서 미적 성취까지 거둔 고려청자의 최고의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기의 고려청자는 찻잔을 주로 하여 식생활에 필요한 그릇을 중심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후 고려청자는 수요와 생산량이 늘어나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했습니다. 중기에 이르러 고려청자는 종류, 형태, 장식기법과 소재가 다양해지고, 유색은 맑고 투명한 비색을 띠는 등 이전 시기에는 볼 수 없었던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대접이나 접시와 같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그릇은 물론, 향로, 향완과 같은 의식기, 그리고 연적, 벼루, 의자, 기와와 같이 일상생활이나 건축 등에 필요한 여러 물건을 청자로 제작하였습니다. 또한 특정한 인물의 모습이나 동물, 식물의 형태를 띤 상형청자를 다수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국보(옛 지정번호 국보 제61호) 청자 어룡모양 주자
청자 어룡모양 주자는 수면 위로 힘차게 도약하는 어룡의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대표적인 상형청자 가운데 하나인 청자 어룡모양 주자는 모양이 독특하고 세부의 표현이 뛰어나며 유색이 아름답지만, 그 무엇보다 용과 물고기가 합쳐진 상상 속의 동물을 정교하게 형상화한 고려 사람들의 뛰어난 창의력과 제작기술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몸체에서 뚜껑에 이르기까지 어룡(魚龍)의 모습을 잘 담아낸 이 주자는 용을 닮은 머리가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하고, 몸은 둥글게 웅크린 채 꼬리를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물이 나오는 몸체 앞쪽의 주구(注口)는 얼굴의 양쪽 가장자리에 활짝 펼쳐진 지느러미를 나타내고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당당하게 응시하는 용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용의 머리 위쪽에는 연꽃 줄기가 늘어뜨려져 있습니다. 눈에는 검은 색 산화철안료(酸化鐵顔料)를 작은 점으로 찍어 생동감과 활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표면에 백토를 칠한 날카로운 이빨은 청자의 유색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돋보입니다. 용의 머리 밑에는 날개 모양으로 된 2개의 큰 지느러미가 달려 있습니다. 터질 듯한 긴장감을 주는 둥근 몸체에는 전면에 크기가 작은 반원형의 장식을 음각으로 일정하게 반복하여 물고기 비늘을 가득 나타냈는데, 유약의 미묘한 두께 차이는 색의 깊이를 더해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냅니다. 아랫부분에는 마치 어룡이 불보살상의 대좌에 앉아 있는 듯 연꽃잎을 양감 있게 장식하였습니다. 몸체의 뒤쪽에는 연꽃 줄기를 꼬아 만든 손잡이를 달아 실용성보다는 상형청자의 높은 장식성을 보여 줍니다.
고려 중기에 제작된 이 주자는 ‘U’자형에 가깝게 꺾인 몸체와 위쪽을 향한 꼬리의 형태가 수면 위로 힘차게 도약하는 어룡의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이러한 형태는 중국 북방에 위치하던 요나라(遼, 916~1125)에서 유행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영성현(寧城縣) 중경박물관(中京博物館)의 <삼채연좌약리어주호(三彩蓮座躍鯉魚注壺)>를 비롯해 내몽고에서 출토된 다수의 주자에 고려청자의 어룡 장식과 매우 유사한 특징이 나타나서, 고려와 요의 교류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11세기 후반부터 고려청자에 나타나는 요 도자의 영향은, 무역으로 고려에 들어온 공예품의 영향과 더불어 현종대(재위 1009∼1031)부터 유입된 거란계 귀화인이 고려에서 금속기와 직물 등의 제작에 참여하며 요 문화의 특성을 일정 부분 반영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국보(옛 지정번호 국보 제96호) 청자 귀룡모양 주자
청자 어룡모양 주자와 더불어 대표적인 상형청자 가운데 하나인 청자 귀룡모양 주자는 연꽃 받침 위에 앉은 거북용의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주자의 머리는 용을 닮은 모습이며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린 채 포효하는 모습이 당당한 위엄을 뿜어냅니다. 머리에는 뿔이 뒤쪽으로 솟아 있습니다. 뾰족하게 튀어 나온 코는 크기가 매우 크며 눈에는 검은 색 산화철안료로 작은 점을 찍어 생동감과 활기를 더했습니다. 입에는 송곳니를 비롯해 이빨과 혀를 정교하게 묘사하여 더욱 강한 인상을 자아냅니다. 몸체는 거북의 형태로 외면에는 거북의 등껍질무늬[龜甲文]를 가득 새기고 그 안에 ‘왕(王)’자를 음각기법으로 섬세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등의 위쪽 중앙에는 구멍이 뚫려 있으며 그 주변에는 연잎을 장식하였습니다. 몸체의 등껍질 아래에는 네 개의 발이 드러나 보이는데 크기가 크고 두툼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발등의 비늘은 물론 발가락의 주름 하나까지도 정교하게 묘사한 점은 고려 상형청자의 높은 완성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청자 귀룡모양 주자는 높은 완성도와 더불어 고려왕실의 불교 사상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거북의 아랫부분에는 어룡모양 주자와 마찬가지로 연꽃잎 대좌를 마련하였으며, 뒤쪽에는 연꽃 줄기를 꼬아 만든 손잡이를 달아 장식성을 더하였습니다. 품격 있는 연꽃잎 대좌 위에 앉은 귀룡은 고려시대 비석의 귀부(龜趺)에서 볼 수 있는 거북과 같은 형태인데, 청자의 발달 배경에 고려 불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면 이 주자 역시 불교의 상징적인 의미를 깊게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피어오른 연꽃 위에 올려진 귀룡에서는 연꽃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연화화생(蓮花化生)’의 상징을 읽어낼 수 있으며, 등껍질 면마다 가늘게 음각된 글자에는 ‘왕즉불(王卽佛)’의 고려 왕실의 불교 사상이 융합되어 있는 듯합니다. 이렇듯 용이나 어룡(魚龍)‧귀룡(龜龍)‧구룡(九龍) 등의 소재는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존재로서 왕실의 권위를 드러냈을 것입니다.
비색의 완성, 상형청자
12〜13세기 고려청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동물이나 식물, 인물을 표현한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상형청자의 소재는 크게 자연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으로 나누어집니다. 자연적 소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 고려시대 사람들이 친근하게 대했을 거라고 짐작되는 동‧식물이 대부분입니다. 원앙‧오리‧참외‧죽순‧표주박 등의 모양으로 병, 주자, 연적, 향로 등을 만들었습니다. 종교적 소재는 고려시대의 국교였던 불교와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룹니다. 불상과 보살상, 나한상을 청자로 만들었고, 연꽃은 연판(蓮瓣)의 형태로 그릇의 내‧외면을 뒤덮거나 몸체 밑동을 장식했습니다. 연판은 향로나 향완 뿐 아니라 대접‧접시와 같이 윗부분이 벌어지는 일상 용기에 자주 사용하였으며 연꽃잎이 활짝 벌어진 듯한 효과를 냈습니다. 도교는 불교처럼 교단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예종대(睿宗代, 1105〜1122)를 중심으로 고려 왕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음을 『고려사』 「예지(禮志)」 잡사조(雜祀條)의 기록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배경 때문인지 복숭아가 담긴 쟁반을 받쳐 든 인물 모양의 주자를 만들기도 하고, 복숭아‧원숭이‧기린‧봉황 등 도교와 관련한 소재를 향로, 연적 등으로 제작하였습니다.
고려의 상형청자는 사물의 대표적인 특징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입체적인 형상을 본떠 만들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실제 사물보다 강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전체 형태를 손으로 빚어 만든 점에서 주로 도범(陶範)을 사용하여 찍어냈던 중국 자기와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하여 더욱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묘사가 가능하였으며, 비색의 맑고 투명함으로 인해 세부 표현의 정교함과 입체감이 잘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고려 전성기의 청자는 이와 같이 상형청자로 대표되는 색(色)과 형(形)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시대에서, 점차 상감(象嵌), 철화 등 강렬한 장식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그 미감이 변화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