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삼장보살도 : 박혜원

세 보살이 모여 있는 이 아름다운 불화의 제목은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입니다. 화기(畫記)에는 흔히 ‘삼장탱(三藏幀)’이라고 적혀 있기도 합니다. 사실 ‘삼장보살’이라는 이름은 관음보살이나 지장보살에 비해 그리 귀에 익숙한 이름은 아닙니다. 어쩌면 ‘삼장법사’와 비슷한 것인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삼장법사라는 말에서도 보듯이 불교에서 ‘삼장’이라는 말은 통상 경장(經藏), 논장(論藏), 율장(律藏)의 수많은 경전을 아울러서 가리키는 말이니 범위가 꽤 넓습니다. 그러나 삼장보살도의 삼장은 그보다 큰 말입니다. 하늘 세계를 관장하는 천장보살(天藏菩薩), 지상 세계를 관장하는 지지보살(持地菩薩), 지하 명부세계를 관장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합친 것이 삼장보살이니 이를 그린 삼장보살도는 하늘과 땅과 지하의 온 세계를 아우르는 불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장보살도, 조선 18세기, 214.5×213cm, 구8572 삼장보살도, 조선 18세기, 214.5×213cm, 구8572

삼장보살도는 가운데의 천장보살, 오른쪽의 지지보살, 왼쪽의 지장보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세 보살은 각각 하늘의 세계, 지상의 세계, 지하 명부세계를 주관합니다.

천장보살, 지지보살, 지장보살

삼장보살도를 잘 들여다보면, 크고 장엄한 세 보살이 그림의 윗부분에 자리잡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운데가 천장보살이고, 오른쪽이 지지보살, 왼쪽이 지장보살입니다. 천장보살의 바로 아래에는 진주보살과 대진주보살이 협시(脇侍)하고 있고, 하늘 세계를 주관하는 보살답게 관을 쓴 천자, 천녀 등 하늘의 권속(眷屬)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지지보살은 그 아래에 용수보살과 다라니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그 위로 화면의 가장자리를 따라 구불구불한 수염을 가진 용왕, 머리가 위로 솟은 아수라 등 여러 신들과 동자 등이 줄지어 있습니다. 지지보살이 거느린 권속들은 불교의 여러 수호신을 그리는 신중도(神衆圖)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실제로 조선 말기로 가면 삼장보살도에 신중도를 포함시켜 그리기도 합니다.

한편, 지장보살 부분은 한 폭의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를 보는 느낌입니다. 지장보살 아래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고, 그 주변으로는 지옥을 다스리는 왕들, 그리고 그 위로는 사자, 귀왕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삼장보살도에는 신중도와 지장보살도가 포함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릴 때에도 신중도와 지장보살도를 참고했을 것입니다.

수륙재에 사용한 불화

그런데 삼장보살에 대한 신앙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보통 부처나 보살은 그가 언급된 경전에서 신앙의 근거를 찾습니다만, 삼장보살을 구성하는 세 보살 중에서 지장보살을 제외한 나머지 천장보살과 지지보살은 불교 경전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삼장보살에 대한 신앙의 근거는 경전에서 찾기보다는 수륙재(水陸齋)라는 불교의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수륙재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의식입니다. 수륙재는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되었는데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건국 과정에서 죽인 고려 왕족의 영혼을 위로하고 새 왕조를 굳건히 하려는 의미에서 성대한 수륙재를 개최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국가가 주도하는 수륙재는 점차 사라지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수륙재를 많이 지냈습니다. 수륙재에는 많은 불화가 사용되었는데, 삼장보살도는 이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수륙재를 지내는 모습(서울 진관사에서 복원한 수륙재, 2013),수륙재에는 많은 불화가 사용되었습니다. 괘불과 같이 잘 알려진 불화도 한 예입니다. 사람들은 불화 앞에서 불보살을 친히 뵙듯 마음을 다하여 공경하였습니다.

수륙재를 지내는 모습(서울 진관사에서 복원한 수륙재, 2013)
수륙재에는 많은 불화가 사용되었습니다. 괘불과 같이 잘 알려진 불화도 한 예입니다.
사람들은 불화 앞에서 불보살을 친히 뵙듯 마음을 다하여 공경하였습니다.
우주 삼라만상에 대한 겸허한 귀의

수륙재 의식은 죽은 자의 영혼이 불보살 앞으로 나아가 정화되고 축복을 받는다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공연과도 같은 의식 속에서 삼장보살은 일종의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배우가 연기하는 대신에 불화를 걸어서 삼장보살이 등장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수륙재가 시작되면, 구천을 떠돌던 외로운 영혼이 의식의 장소로 소환됩니다. 죄업과 번뇌로 더럽혀진 영혼은 먼저 목욕과 양치를 하고 새 옷을 받아 입는 상징적 절차를 거친 뒤에야 신성하고 정결한 의식의 장소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준비를 마치면 먼저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대한 상단(上壇) 의식을 진행하고, 이어서 삼장보살에 대한 중단(中壇) 의식을 진행합니다. 대중들은 바로 이때 삼장보살도 앞에 공경과 공양을 올립니다.

천장보살님께 귀명합니다.
지지보살님께 귀명합니다.
지장보살님께 귀명합니다.

여기에는 가장 높고 존귀한 불법승 삼보를 공경한 뒤에 다시 천장, 지지, 지장보살로 상징되는 온 우주의 삼라만상에게 귀의하고 공경함으로써 영혼을 겸허하게 정화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뿐 아니라 살아서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영혼이 겸허해지고 정화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삼장보살도는 세 보살과 권속들이 이루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우아한 선묘(線描), 부드러운 설채(設彩) 등이 매우 아름답게 조화된 불화입니다. 그런데 이 불화를 감상하는 묘미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불화 앞에서 우주를 대하듯 공경하며 마음을 낮추었을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함께하는 것 역시 이 삼장보살도를 이해하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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