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받침 있는 은잔[銅托銀盞]:채해정

1971년 우연한 계기로 발견된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습니다. 구운 벽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이 벽돌무덤[塼築墳]은 백제 제25대 왕이었던 무령왕(재위 501~523) 부부의 안식처였습니다. 무덤 주인을 알려준 것은 바로 무덤 내부에 있던 묘지석(墓誌石)이었습니다. 여기에 적힌 내용 덕분에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무덤 주인과 만든 시기를 알 수 있는 무덤이 되었습니다.

왕비의 관에 넣은 은잔

무령왕릉에서는 관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허리띠, 신발, 청동거울, 다리미 등 다양한 금속공예품이 출토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발견되었기 때문에 매장 당시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발견 위치와 용도 등을 통해 처음에 묻혔던 위치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출토품은 크게 왕과 왕비의 목관 안에 있던 것과 관 밖에 있던 것으로 나뉩니다. 관 안에 있던 유물은 다시 왕과 왕비가 몸에 착장하고 있던 착장품과 부장품으로 구분됩니다.
그 가운데 왕비의 관에 넣었던 받침 있는 은잔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526년 11월에 사망한 왕비는 529년 2월 무령왕 곁에 묻혔습니다. 왕비의 머리 근처에서 발견된 이 은잔은 뚜껑과 받침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현재로서는 왕비가 평소 사용하던 것인지, 아니면 함께 묻기 위해 새로 만든 것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관에 넣을 만큼 의미가 큰 물건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액체를 담는 용기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무엇을 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받침 있는 은잔, 공주 무령왕릉 출토, 백제(529년 이전) 전체 높이 12.1㎝, 전체 너비 14.7㎝, 공주672

받침 있는 은잔, 공주 무령왕릉 출토, 백제(529년 이전)
전체 높이 12.1㎝, 전체 너비 14.7㎝, 공주672


은잔에 대한 과학적 조사

국립공주박물관은 이 은잔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진행하여 중요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먼저 잔과 뚜껑 및 꼭지는 은 함량이 99wt% 이상인 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뚜껑의 노란색 연꽃무늬 장식은 금 88.79wt%, 은 10.95wt%로 구성된 순도 21.3K의 금이었습니다. 잔받침은 구리 77.53wt%, 주석 21.55wt%로 이루어진 청동입니다. 미술사학자 주경미 박사는 이 잔받침의 금속 성분이 우리나라 전통 유기(鍮器)의 성분과 같으므로 현존하는 한국 전통 유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과학적 조사를 통해 받침 있는 은잔이 금, 은, 청동이라는 다양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공예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뚜껑 뚜껑

잔받침 잔받침

은잔을 장식한 무늬

은잔은 잔받침과 뚜껑이 한 벌을 이루기 때문에 장식 무늬의 구성에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뚜껑 꼭지 아랫부분과 잔의 굽 주위에는 꽃잎이 8장인 연꽃무늬를 새겼습니다. 이 연꽃무늬는 마치 가운데에 펼쳐질 무늬의 테두리처럼 위와 아래에서 공간을 구획하고 있습니다. 잔에는 뿔 모양이 조금씩 다른 용 세 마리가 같은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듯 표현했습니다. 뚜껑에는 네 군데에 자리 잡은 삼산형(三山形) 산 사이로 서로 다른 종류의 새 두 마리, 뿔 달린 사슴 등을 장식했습니다. 산과 그 주변으로는 나무와 꽃봉오리 등이 보입니다.

중국 위(魏)나라 태화(太和, 227~233) 연간에 편찬된 장읍(張揖)의 『광아(廣雅)』에는 용의 머리 위에 박산(博山)이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박산은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신선이 사는 산입니다. 마치 은잔에 이 구절을 묘사한 듯이 잔에는 용을, 뚜껑에는 산을 장식했습니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 역시 신선이 사는 산 모양의 뚜껑과 용 받침대로 되어 있어, 이러한 도상과 문양 구성이 백제에서 유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잔받침 윗면에는 가는 선으로 음각하여 무늬를 표현했습니다. 가운데에는 연꽃무늬를 두고 테두리에는 톱니무늬[鋸齒文]를 둘렀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공간을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한 인면조(人面鳥)를 비롯하여 용, 새, 사슴, 연꽃, 나무 등으로 빼곡하게 채웠습니다. 은잔과 뚜껑에 비해 무늬를 새긴 선이 가늘어 아쉽게도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은잔과 뚜껑의 무늬 은잔과 뚜껑의 무늬

잔받침 윗면의 무늬 잔받침 윗면의 무늬

은잔의 제작지

잔받침이 있고 뚜껑에 꼭지가 달린 잔의 형식은 중국 남조(南朝)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사례는 잔의 형태, 뚜껑과 꼭지를 같이 주조(鑄造)하는 제작기법 등에서 무령왕릉 출토 은잔과 차이가 있습니다. 무령왕릉 출토 은잔은 잔을 주조하고 굽을 별도로 만든 다음 땜으로 서로 붙인 것입니다. 뚜껑, 꼭지, 연꽃무늬 금판도 각각 따로 만든 후 결합했습니다. 즉 뚜껑 구멍에 꼭지를 끼운 후 끝부분을 못의 머리처럼 만들어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마치 꼭지가 리벳처럼 사용된 것입니다. 이처럼 받침 있는 은잔은 중국 남조와 백제의 잔 제작 방식이 서로 달랐음을 보여줍니다.
처음에 무령왕릉 출토품을 연구한 학자들은 일부 특색 있는 유물들이 중국 남조의 양(梁)에서 제작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백제 지역에서 유물이 많이 출토되면서 관련 연구도 활발해졌고 무령왕릉 출토품 제작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이제 대부분의 학자는 백제에서 이 받침 있는 은잔을 만들었다고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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