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영혼의 수호자 십이지신상-개, 호랑이, 뱀:오세은

개, 호랑이, 뱀을 표현한 중국 당대(唐代)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도용(陶俑)입니다. 동물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수면인신(獸面人身)’의 형상입니다. 고운 점토로 형태를 만들어 구운 다음, 몸 전체에 분장토를 입히고 얼굴과 목 부분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 유약을 발랐습니다.
동물의 특징을 살려 얼굴을 표현했는데, 귀를 쫑긋 세운 개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오른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는 형상은 뱀으로 눈, 코, 입을 붉은색으로 칠했습니다. 호랑이는 검은색으로 눈과 얼룩무늬를 그리고 입 가장자리를 붉은색으로 칠하여 입 안이 살짝 보이는 효과를 주었으며 앙다문 입 양쪽으로 송곳니를 표현해 맹수임을 나타냈습니다. 세 개의 도용 모두 왼손과 오른손을 아래위로 포개어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모습인데, 특히 왼손 손가락을 뚜렷하게 표현했습니다. 내의(內衣) 위에 각각 흰색, 갈색, 녹색의 소매 폭이 넓은 단령포를 입었고 천으로 만든 대를 띠었습니다. 아랫도리는 모두 땅에 닿을 정도로 긴 황색 옷을 입고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있는데, 신발의 앞코만 살짝 나와 있습니다.
걸을 때 올이 걸리지 않도록 신발 앞코가 위로 올라가 있는데, 이는 당대 귀족사회에서 유행한 복식형태입니다.

호랑이, 뱀, 개 십이지 도용, 중국 당, 높이 27.8cm(호랑이), 높이 26.2cm(뱀), 높이26.7cm(개), 구3341-3343

호랑이, 뱀, 개 십이지 도용, 중국 당, 높이 27.8cm(호랑이), 높이 26.2cm(뱀), 높이26.7cm(개), 구3341-3343

중국 십이지문화의 기원과 발전

중국 십이지문화(十二支文化)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기원전 12세기 상대(商代) 후기 은허(殷墟) 유적에서 발견된 갑골문(甲骨文)의 “병자(丙子)”, “계미(癸未)” 등이 현재까지는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십간(十干)과 십이지를 조합하여 날짜와 방위를 나타낸 글자입니다. 동물로 십이지를 상징하던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관념 속에서 전해지던 십이지를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동물로 형상화했고 한대(漢代)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나라 때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벽사(辟邪)의 의미로 무덤에 십이지신상을 묻는 풍습이 유행했습니다. 당대 십이지신상은 북방과 남방 지역이 다르게 발전합니다. 북방 지역에서는 열두 가지 동물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수면인신(獸面人身)’의 형상만 만들었고, 짧은 기간 유행하여 출토 수량도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이에 비해 남방 지역에서는 십이지 풍습이 오랜 기간 이어졌습니다. 형상도 시기별로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수대(隋代) 말부터 당 현종(玄宗, 재위 712~756) 때까지인 초기에는 동물의 실제 모습으로 십이지신상을 만들어 무덤에 함께 묻었습니다. 당 현종부터 당 말기까지인 중기에는 동물 머리에 사람 몸을 한 ‘수면인신’의 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 말기부터 오대(五代)까지는 인자한 모습의 사람이 열두 동물 가운데 한 마리씩을 안고 있는 형상으로 변화합니다. 십이지신상은 12개를 한 세트로 하여 무덤 안 동서남북의 작은 감실(龕室)에 각각 3개씩 놓였습니다. 그러나 석관 위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12개보다 적은 수량이 놓이거나 같은 형상이 중복되기도 하여 당시 규정이 매우 엄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에 전해진 십이지신상

중국의 십이지신상은 신라시대에 우리나라에 전해졌습니다. 곱돌 또는 흙으로 만든 것과 부조로 된 ‘수면인신’의 십이지신상이 신라 왕릉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오직 수면인신의 형상만 발견된 것은 중국 북방 계통의 십이지신상이 전해졌거나 당나라 중기 때 남방 계통의 십이지신상이 전해진 결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십이지 도용을 무덤에 껴묻거리[副葬品]로 같이 묻었습니다. 민애왕(閔哀王, 재위 838~839)의 능으로 전하는 곳에서 발견된 곱돌로 만든 쥐, 닭, 돼지의 수면인신 형상과 경주 내남면에서 발견된 흙으로 만든 부조상 8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모두 평복(平服)을 입고 두 손을 가운데 모은 공수(拱手) 자세에 무릎을 굽히고 있는 모습입니다. 십이지 도용은 이후 점차 수호신으로 성격이 변하여 주로 무덤 둘레돌의 신상(神像)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통일신라시기 김유신묘로 알려진 무덤의 둘레돌 가운데 돼지 십이지신상은 긴소매와 펄럭이는 천의를 걸치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에 칼을 든 무장의 모습으로 바위 모양 대좌 위에 서 있습니다. 이는 중국 당나라 무관 도용의 모습과 매우 비슷합니다. 이 밖에 성덕왕(善德王, 재위 702~737)의 능과 원성왕(元聖王, 재위785~798)의 능으로 알려진 괘릉(掛陵) 등의 둘레돌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했습니다.

쥐, 닭, 돼지 십이지 도용, 통일신라, 전 민애왕릉, 높이 10.6cm(쥐, 경주42425), 높이 11.1c7m(닭, 경주42427), 높이 9.0cm(돼지, 경주42428),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쥐, 닭, 돼지 십이지 도용, 통일신라, 전 민애왕릉,
높이 10.6cm(쥐, 경주42425), 높이 11.1c7m(닭, 경주42427),
높이 9.0cm(돼지, 경주42428),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돼지 십이지신상, 통일신라, 전 김유신묘, 높이 40.8cm, 너비 23.0cm, 경주1724,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돼지 십이지신상, 통일신라, 전 김유신묘,
높이 40.8cm, 너비 23.0cm, 경주1724,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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