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모노가타리』와 겐지에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는 11세기 초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라는 여성 작가가 창작한 일본의 대표적인 장편 문학 소설로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히카루 겐지(光源氏)라는 귀족 남성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이 작품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 궁정(宮廷)이 그 배경입니다. 모노가타리(物語), 즉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감상하는 방법은 『겐지모노가타리』 본문에도 등장할 정도로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야기 감상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겐지모노가타리』를 첩(帖), 회권(繪卷), 병풍(屛風) 등 다양한 형식의 그림으로 그린 것을 겐지에(源氏繪)라고 부릅니다. 겐지에는 『겐지모노가타리』가 창작된 시기부터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제작되고 감상되었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겐지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은 12세기에 제작되어 일본 국보(國寶)로 지정되어 있는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源氏物語繪卷)>(德川美術館, 五島美術館 소장)입니다.
겐지에 소유와 감상의 의미
겐지에를 주로 감상했던 계층은 구게(公家)라고 불리는 천황을 측근에서 보필하던 귀족들이었습니다. 교토에 거주하며 헤이안 시대의 지위를 세습하던 구게들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1185~1333) 이후 무사들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빼앗겨 이름뿐인 지배층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구게들은 『겐지모노가타리』를 읽고 겐지에를 감상하며 자신들이 영화를 누렸던 헤이안 시대 궁정을 추억하곤 했습니다. 『겐지모노가타리』에 묘사된 화려한 궁정 생활, 그리고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겐지에는 자신들의 정체성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정치적 실권을 가진 무사武士들도 구게들의 궁정 문화를 흠모하여 자신들도 그것을 향유하려 애썼습니다. 무사들은 학식 있는 구게를 초빙해 『겐지모노가타리』를 공부했고, 유명한 화가에게 겐지에를 주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름 높은 황족이나 학식 있는 귀족들에게 겐지에에 붙일 글씨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겐지모노가타리』와 겐지에는 구게가 누렸던 화려한 궁정 문화를 상징하는 물건으로서 일종의 문화 권력이 된 것입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1467~1590)에 패권 경쟁을 벌인 다이묘(大名)들은 무력뿐만이 아니라 『겐지모노가타리』가 상징하는 문화 권력을 소유하여 본인들의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겐지에는 『겐지모노가타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진 구게가 무사의 주문을 받아 겐지에 제작을 지휘하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제작한 작품의 예로 이즈미시 구보소 기념 미술관(和泉市久保惣記念美術館) 소장 도사 미쓰요시(土佐光吉, 1539~1613)의 <겐지모노가타리 수감(源氏物語手鑑)>, 하버드 대학 미술관 소장 <겐지모노가타리 화첩(源氏物語畫帖)> 등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겐지모노가타리 화첩>
국립중앙박물관 일본실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겐지모노가타리 화첩>은 총 54첩의 『겐지모노가타리』를 첩 당 하나의 그림과 하나의 설명문으로 구성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즉 54장의 그림과 각각의 그림에 대한 고토바가키(詞書)로 불리는 설명문 54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은 겐지모노가타리 화첩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방식입니다. 그림은 아래와 윗부분이 금빛 구름으로 감싸여 있고, 나머지 부분에 채색한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물의 복식과 풍경의 묘사가 매우 세밀하고 정교한 것이 특징입니다. 고토바가키는 온갖 다채로운 풀과 꽃이 금으로 그려진 화려한 종이에 쓰였습니다. 고토바가키의 맨 오른쪽에는 각 첩의 제목이 쓰여 있어 어떤 첩의 내용인지 알게 해줍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54첩이나 되는 긴 이야기인 『겐지모노가타리』를 그림으로 그릴 때 어떠한 장면을 골라 그려야 할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겐지모노가타리』가 처음 그림으로 그려진 이후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각 첩에서 자주 그려지는 장면들이 정해지기 시작했고,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6~1573)가 되면 이러한 장면들을 정리한 일종의 참고 서적이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참고서적은 특히 『겐지모노가타리』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무사나 화가들이 겐지에를 주문하거나 제작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림이 담긴 두 개의 상자, 해당 장면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는 열쇠
그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겐지모노가타리 화첩>에는 어떠한 장면이 그려졌는지 감상해 보도록 할까요?
『겐지모노가타리』 제17첩 「에아와세(繪合)」는 그림으로 그린 모노가타리를 감상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첩입니다. 이 장면은 천황의 총애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두 후궁이 천황 앞에서 고금古今의 모노가타리(物語) 그림을 모아 누구의 그림이 더 훌륭한지 대결하는 장면입니다. 그림의 중앙을 보면 두 후궁이 천황에게 제출한 그림을 담은 상자들이 있는데, 이 상자들이 장면의 내용을 이해하게 해 주는 열쇠입니다. 화첩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그림 상자들을 보고 이 장면이 모노가타리의 우열을 가리는 「에아와세」임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각 첩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을 한 장면 뽑고, 그 장면의 대표적인 모티브를 묘사함으로써 이야기의 이해를 돕는 방식은 당시 사람들이 54첩이나 되는 긴 내용의 이야기를 한 권의 화첩으로 감상하기 위해 짜냈던 묘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겐지에의 묘사 기법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겐지모노가타리 화첩> 의 세부를 살펴보면 인물과 배경의 묘사방법에서 매우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화첩의 남성과 여성이 모두 숯처럼 짙고 검은 눈썹, 점 하나를 살짝 찍은 것 같은 눈을 가지고 있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히키메카기하나(引目鉤鼻)라는 인물 묘사 기법으로, 겐지에에서 자주 사용된 기법입니다. 이 기법으로 그려진 인물은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얼굴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무표정한 표정이 오히려 감상자가 자신의 감정을 등장인물에 더욱 쉽게 대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습니다. 또 다른 특징적인 기법은 후키누키야타이(吹抜屋台)라는 배경 묘사 방법입니다. 건물의 지붕을 모두 없애고 기둥과 미닫이문만으로 실내를 표현하는 이 기법은 건물 내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묘사하는 데 적합했습니다.
2 후키누키야타이 기법으로 그려진 실내 장면
<겐지모노가타리 화첩>은 일본 헤이안 시대의 화려하고 우아했던 궁정문화를 묘사한 소설 『겐지모노가타리』의 내용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화첩을 통해 우리는 문학작품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감상하는 일본 회화 전통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