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일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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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태평성시도
<자막>
<태평성시도>는 도성 안 시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병풍입니다. <태평성시도>라는 여덟 폭 병풍에는 어느 상상 속의 도시가 펼쳐집니다. 가장 왼쪽에는 삼층 누각이 있는 거대한 성문이 서 있습니다. 성문을 들어서면 넓은 도로와 반듯하게 정비된 하천, 길가의 상점과 공방, 그리고 노점이 이어집니다. 그림에는 모두 2,1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저마다 온갖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집 안에서의 일상생활부터 상공업, 놀이, 주먹다툼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입니다.
그러면 <태평성시도>속에 벌어지고 있는 온갖 이야기들을 함께 살펴보시지요.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리 가득한 인파입니다. 신혼부부의 행렬도 그 속에 자리하지요. 기러기를 안고 신랑 앞에 걸어가는 기럭아비와 청사초롱은 초행의 풍습을 전해줍니다. 신부의 가마를 뒤따르며 장난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습니다. 악공을 앞세우고 거리를 누비는 장원급제자의 삼일유가 행렬도 보입니다. 사흘동안 거리를 누비며 과거 급제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만, 부디 청렴한 관리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길가에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너무 많아서 다 살펴보기 어려울 정도인데요, 화분을 파는 원예점, 그리고 안경점, 온갖 생활용품을 파는 잡화노점, 거울 가게, 비단 가게가 눈에 띕니다. 채소와 과일을 파는 노점이 곳곳에 깔리고, 건어물을 파는 가게와, 고기를 썰어 파는 푸줏간도 보입니다. 생활을 위한 모든 물건을 살 수 있지요. 상점에 팔 수공예품을 만드는 공방도 곳곳에 있습니다. 목화의 씨를 빼고 활로 타서 솜을 만드는 공방, 동물의 가죽을 벗겨 가공하는 갖바치들의 공방에서 활발한 상공업 활동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는 게임에 몰두하는 옛 사람들도 보입니다. 전통의 바둑과 윷놀이, 고누놀이는 남녀노소 즐거워했고, 쌍륙과 승경도 놀이 같은 주사위 놀이도 밤을 새는 게임이었습니다. 이런 번화한 도시를 세우고 가꾸는 것도 역시 사람이겠지요. 통나무를 깎아 건축 부재를 다듬고, 기계식 도르래인 녹로를 사용해 건물을 짓는 사람들이 보이시나요? 그 옆을 흐르는 하천은 모래와 흙이 쌓여 물길이 막힐까 걱정되었나 봅니다. 세 사람이 한 조로 가래를 다루어 하천 바닥의 흙을 퍼내고 있습니다. 이를 지게에 실어 치우고 있는데요, 실제로 조선시대에 청계천 물길을 정비하는 준천은 중요한 국가사업의 하나였습니다.
<태평성시도>에는 집집마다 다양한 연등이 걸려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종로에서 청계천에 이르는 한양 한복판에서 사월 초파일에 ‘등시’ 행사가 열렸다고 합니다. 연등을 밝히고 밤늦도록 나들이하는 태평한 풍습이었습니다. 그림 아래쪽에는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객주가 있습니다. 객주에 세운 장대에는 한자 ‘태’자와 ‘평’자 모양으로 만든 연등이 걸려있습니다. 이 병풍이 태평한 도시, 즉 <태평성시>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지요.
<태평성시도>를 보다 보면 이곳이 조선인지 중국인지 아리송해지기도 합니다. 남성들은 옷고름 대신 띠를 매고 두건을 쓰고 있어서 갓과 도포를 즐겨 입었던 조선시대 복식과 차이가 있지요. 그래도 저고리 옷깃에 동정을 달고 치마를 입은 여인들의 옷은 조선의 풍속에 가깝습니다. 거리에 서 있는 문짝 없는 대문인 패루는 전형적인 중국식 건축이지만, 실내에서 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좌식 공간은 조선다운 모습이지요. 이러한 표현은 <태평성시도>가 현실과 상상이 어우러진 그림임을 보여줍니다. 풍속화처럼 조선의 현실에서 펼쳐지는 갖가지 사람살이를 보여주면서도, 더 번화하고 더 이상적인 상상의 태평성대를 표현하기 위해서 송나라나 명나라와 같이 번성했던 중국의 문화를 그림에 포함시켰던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태평성시도>에는 글이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누가 왜 그린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큰 병풍에 너무나 섬세한 붓질과 채색을 한 솜씨를 보면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의 도화서 화원들이 힘을 모아 그린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태평성시도>를 주문하고 감상한 사람들은 상공업이 활발하여 온갖 물산이 넘쳐나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즐겁게 살아가는 대도시를 태평한 세계로 꿈꾸었습니다. <태평성시도> 속의 도시는 한양인 듯 한양이 아닌, 말 그대로 태평한 이상세계입니다. “태평한 세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그려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