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다호리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목관묘군의 하나로 고대국가 형성에 관한 새로운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다호리 유적 널무덤〔木棺墓〕의 가장 큰 특징은 관 아래 무덤 바닥 한가운데 부장품을 넣기 위한 구덩이〔腰坑〕를 판 것인데, 이는 다호리 유적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호 무덤의 구덩이에서 발견한 바구니에서는 옻칠한 칼집이 있는 한국식 동검과 철검・청동 투겁창・쇠 투겁창・화살 같은 무기류와 따비・쇠도끼 등 철로 만든 농공구류, 중국 거울과 허리띠 고리・구슬 같은 장신구, 다양한 칠기와 그 안에 담긴 곡식, 부채, 말방울, 오수전, 붓, 노끈 등 엄청난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중국 거울과 중국 화폐인 오수전이 나온 것으로 보아 이 무덤은 기원전 1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 기록에는 풍부한 철광산과 제철 기술을 보유한 변한이 낙랑과 왜에도 철을 공급했으며, 철을 화폐처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다호리 유적에서는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2개씩 묶은 주조철부와 중국계 유물, 야요이 토기 같은 왜계倭系 유물도 출토되었습니다. 즉 당시 변한의 지배 세력들은 철의 생산과 통제, 교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권력을 유지, 확대해 나갔습니다. 다호리 유적은 이런 변한 사회 지배층의 집단 묘지이며, 그중 가장 다양하고 많은 부장품이 출토된 1호 무덤의 주인공은 변한의 지배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