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문 청동기에는 청동기시대의 농사짓는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15세기를 전후해 한반도는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경農耕 사회가 되었습니다. 농경이라는 새로운 생계 경제가 등장하면서 마을의 규모나 입지, 생활 도구, 의례 등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청동기시대 농경의 구체적인 모습은 유적의 입지나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의 기능으로 살펴보는 간적접인 방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전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농경문 청동기는 문자 기록이 없던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농경문 청동기의 고리가 달린 면에는 나뭇가지 위에 새가 마주 보고 앉은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대 면에는 오른쪽에 머리에 긴 깃털을 꽂고 벌거벗은 채 따비로 밭을 가는 남자와 괭이를 치켜든 사람, 왼쪽에는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봄에 농사를 시작해 가을에 수확하기까지의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농경문 청동기는 벌거벗은 채 농사짓는 모습과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가 의미하는 바를 통해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에 사용된 도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랫부분이 깨져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전체적인 형태가 대전 괴정동 유적과 아산 남성리 유적에서 출토된 방패 모양 청동기와 매우 유사해 이 농경문 청동기 역시 기원전 5세기~기원전 4세기경 한국식 동검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한 단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농경문 청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