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병자호란으로 훼손된 종묘의 신주를 수리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

1636년(인조 14) 12월, 청淸이 압록강을 건너 한양까지 침략한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왕실은 종묘에 봉안된 신주를 급하게 강화도로 옮겼다. 그러나 안전하다고 생각한 강화도 마저 함락되자 신주를 지키기 위해 땅에 묻었다. 의궤에는 당시 상황을 "땅에 묻었으나 청나라 병사들이 파헤치고, 또 다시 묻었으나 또 파헤쳤다 埋安廂社主,被清兵崛出,再埋再堀"'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신주가 상했고,일부는 분실하였다. 이에 조정은 한양으로 돌아온 직후부터 신주를 고치기 위해 종묘수리 도감을 설치하였다. 인조는 가능한 많은 신주를 다시 만들고 싶어 했고, 신하들은 작은 흠집이 난 것들은 제외하고 최소한의 신주만 고치자는 입장이었다. 이 의궤에는 국왕과 신하들이 어떻게 그 합의점을 찾았는지 알 수 있도록 논의 과정을 모두
수록하였다. 당시 국왕과 신하들이 파악한 신주의 상태를 보여주는 목록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새로 수리한 신주는 세종, 선조 등 모두 11위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