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명칭
보물 심득경 초상(2006), 沈得經 肖像
- 국적/시대
한국
- 재질
종이
- 분류
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 지정문화유산
보물
- 소장품번호
본관 12850
이 작품은 심득경(1673~1710)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를 애도하여 윤두서가 제작한 그림이다. 심득경의 할머니는 윤두서의 증조부인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큰딸로 심득경과 윤두서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심득경은 윤두서보다 5살 아래였는데 1693년 윤두서와 함께 진사에 급제한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매일같이 윤두서와 어울렸다. 그러던 심득경이 1710년 8월 38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이를 애통하게 여긴 윤두서가 그 해 11월에 그를 추모하여 초상을 그린 것이다.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초상화 양식을 따랐지만 기존의 초상화와 달리 필치가 부드럽고 담채(淡彩)가 은은하여 문인화가의 솜씨다운 면모가 두드러진다. 이 초상을 그린 후 심득경의 집에 보내 벽에 걸었더니 온 집안이 놀라서 울었는데, 마치 죽은 이가 되살아 온 것 같았다고 한다. 초상에서 보이는 심득경은 동파관(東坡冠)[소동파蘇東坡(1036~1101)가 처음 만들어 썼다는 관의 일종]에 유복(儒服,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입는 옷) 차림을 하고 있다. 몸을 오른쪽으로 약간 틀고 의자에 앉아 손을 앞에 모은 자세이다. 허리에는 청색 세조대(細條帶)를 맸고, 녹색과 흰색의 혜(鞋)를 신었다. 심득경의 인상은 인자하고 내성적이다. 눈은 맑은데 초점을 잃어 이미 고인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코는 단정하며 입술은 붉어 기품이 있다. 피부는 깨끗하고 눈썹은 가지런하며 귀는 시원하다. 살쩍(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털)은 성글고 수염은 많지도 적지도 않다. 심득경이 세상을 떠난 후 기억만으로 그려냈지만 묘사와 표현이 핍진(逼眞)하여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전하는 듯하다. 그림에 쓰인 찬문(贊文)에서도 이 초상이 심득경의 모습과 인품을 너무나 잘 나타냈다 하여 감탄하고 있다. 보물로도 지정되었지만 <심득경 초상>은 문인화가가 그린 초상화의 명작으로 손꼽히며 윤두서가 이 분야에서도 당대의 선구였음을 잘 보여준다.
유의사항
- 지정문화유산의 실물 복제품을 제작하고자 하는 경우는 별도의 허가 신청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