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빈이씨 백자 묘지명
- 다른명칭
御製暎嬪李氏白磁墓誌銘
-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 작가
영조임금이 문장 지음.사위 朴明源이 글씨를 써서 만듦
- 분류
사회생활 - 의례생활 - 상장 - 묘지
- 소장품번호
신수 6271
영빈이씨(1696-1764년)는 영조(英祖: 1694-1776년) 임금의 후궁後宮이다. 후궁이란 왕의 정실 부인인 왕비를 제외한 왕의 여인 즉 왕의 첩妾을 말한다. 영빈에서 빈嬪이란 후궁 가운데 가장 높은 품계인 정 1품의 이름이다. 영빈이씨의 묘는 연세대학교 부근에 있었으며 그 이름을 수경원綏慶園이라 불렀다. 1970년 9월 수경원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西五陵 경내로 이장할 때 이 묘지가 발견되었다. 이 묘지는 영빈이씨가 죽자 남편이 영조 임금이 문장을 지었고 글씨는 사위인 박명원朴明源이 써 만들었다. 영빈이씨가 1764년에 죽자 영조는 매우 애통해하면서 후궁 제일의 예禮로 장례를 치루게 하였으며 의열義烈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의열묘(義烈廟: 나중에 선희궁宣禧宮으로 고침)이란 사당을 지어 자주 왕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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