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일20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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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영상] 위로와 기쁨이 된 규방 용품 - 치과의사 박영숙
[수어영상] 위로와 기쁨이 된 규방 용품 - 치과의사 박영숙
남편과 한평생 함께 모은 문화재, 옛 여인들의 삶이 수놓인 규방 용품.
위로와 기쁨이 된 규방 용품, 치과의사 박영숙.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곳을 아들과 함께 찾은 박영숙 선생. 한평생 수집한 여인들의 규방용품은 그의 위로이자 큰 기쁨이었다. 치과의사였던 박영숙 선생은 남편 허동화 선생과 함께 젊은 시절부터 자수, 보자기 등 옛 여인들이 사용하던 규방용품을 수집해왔다.
<박영숙 기증자 인터뷰>
우리나라 여자들의 안목이 높고 바느질 솜씨가 세계적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이걸 모을 생각이 없으니까 수집하는 기쁨이 더 있었죠. 당시에는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놀라운 아름다움을 지닌 규방용품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었다. 신문물에 자리를 내주고 뒷방으로 밀려난 옛 규방용품들 이것을 함께 찾아다니는 것은 부부의 삶의 활력소였다.
<박영숙 기증자 인터뷰>
아주 대한민국을 샅샅이 다 뒤진 거예요. 도시마다... 내가 또 치과를 하니까 진료만 하면 답답하잖아요. 그러니까 옛날 규방용품 사러 돌아다니는 것이 바람도 쐬고 기분이 매우 좋았어요.
1976년 한국자수박물관을 설립한 부부.
부부는 모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국내외 전시를 통해 한국 규방 문화의 아름다움을 세계 곳곳에 알렸다.
<허원실 박영숙 선생 아들 인터뷰>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보다는 해외에서 많이 알아보시고 해외 전시를 약 60~70회 해서 기네스북에 올라있습니다. 개인 박물관으로서 해외 전시를 많이 한 기록입니다.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인터뷰>
박영숙·허동화 수집품은 한국에서 사라져가던 규방공예라고 하죠. 그 진가를 알아내고 그것을 문화유산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문화재의 수준으로) 격상시켰어요.
여인들의 투박한 돌덩이를 모으다. 옷감을 두드려서 구김을 펴던 다듬잇돌.
박영숙 선생은 특히 다듬잇돌을 모으는 데 열중했다. 옷감 등의 구김을 두드려서 펴는 다듬잇돌은 과거엔 한·중·일 여성들이 사용했지만 이젠 한국에만 남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박영숙 기증자 인터뷰>
그래서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는 거니까. 제가 이것을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또 다듬잇돌이 얼마나 예뻐요. 조각품이잖아요. 그게. 돌 하나 자체가 완전한 물건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수집하기 시작한 거예요.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인터뷰>
(그것을 수집하셨다니)보통 분이 아닌 거예요. 보통 사람들이면 다듬잇돌을 왜 모으겠어요? (다듬잇돌 같은 것도 모아야) 한국 문화의 전체 모습을 알 수 있잖아요. (그리고 다듬잇돌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 문화는 자연스러워요. 억지로 예쁘게 만들려고 하지 않고 실용적으로 단순하고 간결하게 만들어서 우리 것은 자연스러워요.
환갑을 넘기면서, 부부는 오랫동안 생각해 온 것을 실천하기로 결심한다. 바로, 기증이다. 1996년부터 2년 간 세 차례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유물은 총 631점. 다듬잇돌을 포함해 화로, 가위 등 옛 여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다양한 규방용품들이었다. 지난 2018년 남편 허동화 선생이 먼저 떠난 뒤에는 남편의 자수박물관 유물들도 모두 기증했다. 모으면서 행복했고 나누어서 더 행복하다는 박영숙 선생. 부부의 아름다운 뜻은 기증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기증한 규방용품에 수놓아진 부부의 뜻.
<박영숙 기증자 인터뷰>
우리 남편이 먼저 돌아가셔서 말도 못하게 속상하지만 수집한 것을 다 기증했으니까 조금 위로가 되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니까 너무 기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