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일201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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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부서 고고역사부
신라 금관총 출토 大刀에서 ‘尒斯智王’ 명문 확인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경주 금관총(1921년 조사)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에서 ‘尒斯智王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을 확인하였는데 이는 신라무덤에서 출토된 최초의 왕명(王名)이다.
이 명문은 국립박물관이 추진하고 있는 미공개 자료에 대한 정리 사업인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의 하나로, 보존과학부에서 금관총 출토 고리자루큰칼에 대한 보존처리를 하는 과정에 발견되었다.
명문은 칼집 금속부에 선각되었는데, 칼집 하단 앞뒷면에 ‘尒斯智王이사지왕’, ‘十십’, 칼집 상단에 ‘尒이’가 새겨져 있다. 또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된 금관총 출토 고리자루큰칼에서도 ‘尒이’, ‘八팔’, ‘十십’이라는 명문이 확인되었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앞면 十 앞면 八 뒷면 尒 |
‘尒斯智王’은 신라 금석문 등에 보이는 전형적인 신라식 표기로, 금관총의 주인공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명문은 신라 무덤에서 최초로 확인된 왕명(王名)이며, 이로써 금관총은 주인공이 밝혀지는 유일한 신라 무덤이라는데 의의가 매우 크다.
‘尒斯智王’이라는 왕명은 『三國史記』, 『三國遺事』및 신라 금석문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는 ‘尒斯智王’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尒斯智王’은 금관총의 주인공으로서, 당시 신라 최고지배자인 마립간(麻立干: 내물왕~지증왕) 중 한 사람의 다른 왕명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현재의 자료로서 한계점이 많다.
한편 ‘尒斯智王’은 당시 왕으로 불린 고위 귀족 중 한 사람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포항 냉수리 신라비(503년 건립)에 보이는 ‘此七王等차칠왕등’과 같은 기록을 통해 왕(마립간)이 아닌 사람도 왕으로 불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금관총의 ‘尒斯智王’은 신라에서 6세기 전반까지 왕과 왕 아래에 있는 갈문왕이나 간지(干支)를 가진 고위 귀족도 왕으로 불렸다는 일부 학계의 연구를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尒斯智王’을 고위 귀족으로 볼 때, 금관총ㆍ천마총 등 지금까지 금관이 출토된 신라 무덤을 마립간의 무덤으로 비정한 많은 국내외 연구는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명문은 금관이 마립간과 고위 귀족 등이 함께 사용하였으며 마립간만의 상징물이 아님을 분명히 알려 준다.
금관총은 1921년 주택 공사 중 신라 무덤에서 최초로 금관이 발견되어 세상의 주목을 받았으나 유물 정리와 보고서 작업은 당시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독점되었다. 금관총 조사 이후 92년이 지난 오늘, 우리 손에 의해 금관총의 중요성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또 금관총 고리자루큰칼에서 명문이 확인되어 조선총독부 박물관 관련 자료의 가치가 재인식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국립박물관은 현재 진행 중인 미공개 자료 조사 사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함과 동시에 소장품에 대한 보존처리와 관리 방안을 한층 더 강화해 나갈 것이다.
[금관총 명문대도 사진자료] 붙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