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저내유락도(邸內遊樂圖) – 일본 에도시대 17세기의 놀이 문화 : 정미연

<저내유락도(邸內遊樂圖)>는 ‘실내에서 놀고 즐기는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6폭으로 이루어진 병풍 2틀 한 쌍의 화면에 저택 마당과 실내에서 여러 가지 ‘놀이’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일상생활 모습을 그린 ‘풍속화(風俗畫)’에 속하는 그림으로, 이 병풍과 같이 야외나 실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것을 ‘유락도(遊樂圖)’라고 부릅니다. 일본에서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전반에 걸쳐 이러한 유락도가 많이 그려졌습니다. 전국의 지배권을 두고 쟁쟁한 무사들의 싸움이 끊이지 않던 전국시대(戰國時代)가 끝이 나고 평화가 찾아온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를 만끽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담았습니다.

필자미상, <저내유락도>, 일본 에도시대 17세기, 종이에 채색, 각 88.5×281.0cm, 구8561

필자미상, <저내유락도>, 일본 에도시대 17세기, 종이에 채색, 각 88.5×281.0cm, 구8561

필자미상, <저내유락도>, 일본 에도시대 17세기, 종이에 채색, 각 88.5×281.0cm, 구8561
유흥(遊興) - 즐겁게 놀다

‘遊びをせんとや生まれけむ[놀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인가]’. 이 말은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의 가요집(歌謡集) 『료진히쇼[梁塵秘抄]』에 나오는 말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어린아이의 떠드는 목소리를 들으니 어른마저 흥겨워진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내유락도〉는 이 구절처럼 ‘놀이’에 집중한 사람들을 묘사했습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오른쪽 병풍 중앙의 윤무(輪舞)입니다. 원 중앙에서는 북과 소고를 든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그 바깥을 다채로운 무늬의 옷을 입은 남녀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흥겨운 몸짓이 고조되는 즐거움을 나타냅니다. 그 옆 건물 1층 마루에는 술잔을 기울이거나 서로를 껴안은 채 윤무를 구경하는 남녀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이 건물이 기방임을 알려줍니다.
저택 내부로 가봅시다. 1층에 머리를 삭발한 승려가 엎드려 누운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들 앞에는 찻잔과 찻가루가 든 차통, 그리고 찻물을 담아 보관하는 용기 등 여러 가지 다구茶具들이 놓여 있습니다. 차노유[茶の湯] 즉 다도는 차를 마시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다구의 선택과 사용, 차의 종류를 알아맞히는 투차 등 여가를 즐기는 일종의 ‘놀이’였습니다.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모습[輪舞]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모습[輪舞]

다도[차노유茶の湯]다도[차노유茶の湯]

왼쪽 병풍으로 가봅시다. 상의를 벗은 남녀와 물통이 그려진 목욕탕이 있습니다. 막 탕에 들어가려고 하는 남녀의 하반신이 살짝 보입니다. 에도시대에는 ‘센토[銭湯]’라고 불린 공중목욕탕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목욕탕은 뜨겁게 달군 돌 위에 물을 끼얹어 수증기를 내 상반신을 뜸 들이고, 욕조에 허리 높이까지 뜨거운 물을 부어 하반신을 담그는 방식이었습니다. 지금의 사우나와 같은 원리입니다. 뜨거운 증기에 목욕을 하고 나면 피로가 시원하게 풀렸을 것입니다.
건물 안으로 좀 더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 봅시다. 2층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기세루(キセル)’라 불린 기다란 담뱃대를 입에 물고 있는 여인입니다. 담배는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일본에 전해져 에도시대에 크게 유행했습니다.

공중목욕탕[銭湯]공중목욕탕[銭湯]

담배[喫煙]담배[喫煙]

누각 1층에는 붉은 단풍이 그려진 장벽화(障壁畫)를 배경으로 여러 장의 카드를 손에 쥐고 어떤 것을 내보일까 고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루타(カルタ)’라는 카드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가루타’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헤이안시대에 조개껍데기에 그림을 그려 양쪽을 맞춰보는 놀이인 ‘가이아와세(貝合わせ)’에, 서양에서 전래한 카드 게임 방식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놀이입니다. 가루타 놀이는 도박 도구로도 활용되었던 탓에 에도막부는 이 놀이를 금지하기에 이릅니다. 그림에서도 상대방의 패를 엿보려고 고개를 길게 빼거나 곁눈질을 하는 사람들 간의 긴장감이 상당합니다.

가루타 놀이가루타 놀이

<가루타 카드> 75장, 일본 모모야마~에도시대 17세기, 종이에 채색, 각 7.2×4.3cm, 규슈국립박물관 소장, A20, 出典:ColBase (https://colbase.nich.go.jp)<가루타 카드> 75장, 일본 모모야마~에도시대 17세기, 종이에 채색, 각 7.2×4.3cm, 규슈국립박물관 소장, A20,
出典:ColBase (https://colbase.nich.go.jp)

가루타 게임 무리의 옆자리에서는 두 사람이 ‘장기(將棋)’를 두다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한 사람이 말을 되돌리려 하는 상대편의 손목을 붙잡아 저지하고 그 옆에서 다른 사람이 말리고 있습니다. 장기와 같이 우열을 겨루는 놀이는 이렇듯 종종 다툼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장기(將棋)장기(將棋)

<대나무·마름·접시꽃무늬 마키에 장기판(竹菱葵紋散蒔繪將棋盤)>, 일본 에도시대 1816년, 나무에 칠,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H-2809, 出典:ColBase (https://colbase.nich.go.jp)<대나무·마름·접시꽃무늬 마키에 장기판(竹菱葵紋散蒔繪將棋盤)>, 일본 에도시대 1816년, 나무에 칠,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H-2809,
出典:ColBase (https://colbase.nich.go.jp)

청유(淸遊) - 문인(文人) 취미

중국에서는 군자(君子)가 금기서화(琴棋書畫) 즉 음악, 바둑과 장기, 시문(詩文), 회화를 연마하되, 결코 이것을 생계 수단으로 삼지 않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금기서화는 서로 지성을 겨루는 문인의 속되지 않고 청아한 ‘놀이’였습니다. 중국 군자의 금기서화 취미는 일본에도 전해졌습니다. 〈저내유락도〉에서도 금기서화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 병풍 누각 2층에는 줄이 그어진 나무 판에 주사위를 올려놓고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 옆에는 비스듬히 가로누워 놀이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하는 놀이는 ‘쌍륙(雙六)’입니다. 일본에서 ‘스고로쿠’라고 불린 쌍륙은 편을 갈라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에 따라 말을 움직여 가장 빨리 상대의 진에 넣는 쪽이 이기는 놀이입니다. 쌍륙은 금기서화 중 바둑[碁]을 대체하는 놀이로서 그림에 자주 등장합니다.

쌍륙(雙六)쌍륙(雙六)

<대나무·마름·접시꽃무늬 쌍륙판(竹菱葵紋散蒔繪雙六盤)>, 일본 에도시대 1816년, 나무에 칠,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H-2809, 出典:ColBase (https://colbase.nich.go.jp)<대나무·마름·접시꽃무늬 쌍륙판(竹菱葵紋散蒔繪雙六盤)>, 일본 에도시대 1816년, 나무에 칠,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H-2809,
出典:ColBase (https://colbase.nich.go.jp)

왼쪽 병풍의 누각 1층에는 기타처럼 생긴 샤미센[三味線]을 연주하는 세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샤미센 연주자들을 둘러싸고 흥겹게 춤을 추는 남녀도 보입니다. 샤미센은 손가락 혹은 도구로 퉁겨 소리는 내는 현악기로 16세기 초에 류큐[琉球, 현재의 오키나와]에서 일본에 전해진 악기입니다. 일본에서 금기서화 중 금(琴)은 이처럼 샤미센 연주 장면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샤미센[三味線] 연주샤미센[三味線] 연주

<매화무늬 샤미센(梅樹据文三味線)>, 일본 에도시대 1798년, 나무에 칠,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H-853, 出典:ColBase (https://colbase.nich.go.jp)<매화무늬 샤미센(梅樹据文三味線)>, 일본 에도시대 1798년, 나무에 칠,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H-853,
出典:ColBase (https://colbase.nich.go.jp)

마지막으로 왼쪽 병풍 오른쪽 구석, 붓과 종이를 들고 고심하는 남녀를 살펴봅시다. 붓과 종이라는 도구로 보아 이 장면은 금기서화 중 서(書)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방구와 종이를 앞에 둔 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듯한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어쩌면 연인에게 보내는 멋진 글귀를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녀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은 단발머리 동자는 편지를 전달하는 심부름꾼[文使い]입니다.

‘그림 속 그림’

〈저내유락도〉 실내는 다양한 장벽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장벽화란 건물의 실내 공간을 구분하는 칸막이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저내유락도〉에는 금박으로 배경을 장식한 채색화와 수묵화 두 가지 장벽화가 건물 내부 곳곳에 그려져 있습니다. 채색화로는 소나무, 국화, 대나무가 그려졌고 수묵화로는 산수, 소나무, 매화 그림이 보입니다. 장벽화는 〈저내유락도〉에 숨어 있는 ‘그림 속 그림’으로, 우리에게 병풍을 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줍니다.

서(書)서(書)

금벽 채색 장벽화, 국화금벽 채색 장벽화, 국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인생의 큰 즐거움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여 스마트 기기 하나로 온갖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서로 어울려 함께 노는 즐거움은 시대와 상관없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직접 만나 웃고 떠들며 감정을 교류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에 충실했던 일본 에도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저내유락도〉를 통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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