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덕산 출토로 전해지는 청동 방울들 - 의례가 중요했던 사회 : 이진민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이건희(李健熙, 1942~2020) 전 삼성 회장의 유족으로부터 9,797건 21,693점이라는 많은 양의 문화유산을 기증받았습니다. 국보, 보물이 다수 포함된 대규모 기증에 국민의 관심은 뜨거웠고, 기증 1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에는 23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다녀갔습니다. 우리 문화유산으로만 구성된 전시로는 전례 없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는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아무런 대가 없이 기증을 선택한 이들의 참뜻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물관 역시 기증자의 뜻을 이어받아 더욱 많은 사람이 보고 느끼고 여러 분야에 활용할 수 있도록 목록집 발간, 전국 순회전시와 상설전시 활용, 국외 전시 등 다양한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덕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청동 방울들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 금속, 서화, 목가구, 석조물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그중 고고품(考古品)은 592건 1,568점이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금속류입니다. 금속류 중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덕산과 논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청동 방울들이 있습니다. 두 일괄품은 모두 국보로 지정되었고 구성 또한 같습니다. 여덟 가지방울[八珠鈴] 2개, 장대투겁 방울[竿頭鈴] 2개, 가지방울[雙頭鈴] 2개, 조합식 가지방울[組合式雙頭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논산 출토품은 깨진 부위가 있는 반면, 덕산 출토품은 상대적으로 좀 더 상태가 좋습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선사·고대품의 설명을 보면 가끔 ‘전(傳)’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확실하게 출토지를 알 수 있는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해지는’ 얘기에 근거한다는 의미입니다.

덕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청동 방울들, 초기 철기시대, 전체 지름 13.8cm(왼쪽 여덟 가지방울), 건희7

덕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청동 방울들, 초기 철기시대, 전체 지름 13.8cm(왼쪽 여덟 가지방울), 2021년 이건희 기증, 건희7

논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청동 방울들, 초기 철기시대, 높이 16.5cm, 너비 9.5cm(오른쪽 장대투겁 방울), 건희6

논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청동 방울들, 초기 철기시대, 높이 16.5cm, 너비 9.5cm(오른쪽 장대투겁 방울), 2021년 이건희 기증, 건희6

청동 방울, 청동 의기 중 하나

이 청동 방울들은 출토지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발굴된 다른 청동기들과의 비교로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청동기는 고고학적으로 철기가 등장하는 초기 철기시대에 더더욱 발전했습니다. 이전 시기 요령식(遼寜式) 동검과는 다른 한국식 동검이 표지이기 때문에 이 시기 청동기 문화를 ‘한국식 동검 문화’라고 합니다.
한국식 동검 문화 단계의 청동기는 크게 무기류, 의기류, 공구류, 기타로 나뉩니다. 무기류에는 동검, 투겁창[銅鉾], 꺾창[銅戈], 의기류에는 거울, 방울, 검파형(劍把形)・방패형・원개형(圓蓋形)・나팔형・견갑형(肩甲形) 동기, 공구류에는 도끼, 끌, 새기개[銅鉈], 기타에는 단추나 수레 부속품 등이 있습니다. 이전 시기보다 수량이 늘어나고 종류가 다양해졌으며 무늬 역시 정교해집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방울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의기류가 눈에 띕니다. 의기류는 ‘이형동기(異形銅器)’라고도 불리는데 정확한 용도나 사용 방법을 알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의 청동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손이나 사슴 무늬,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기하학적 무늬 등에서 샤머니즘적 요소가 엿보이고,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 나오는 방울에 대한 기록으로 볼 때 주로 의례에 이형동기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청동 방울들

한국식 동검 문화 단계의 청동 방울에는 모양에 따라 장대투겁 방울, 여덟 개의 가지에 달린 방울, 직선의 가지 양 끝에 달린 방울, 직선의 가지 한쪽 끝에 달린 방울, 곡선의 가지가 조합된 방울, 닻 모양 방울[錨形鈴], 누에고치 모양의 방울[蠶形鈴]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청동 방울의 다양한 모양을 전 덕산과 논산 청동 방울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덕산과 논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청동 방울들을 언제, 누가 사용했는지 살펴보려면 발굴이 이루어진 다른 유적들과 비교해보아야 합니다. 청동 방울이 다량 출토된 유적은 흔치 않은데 대표적으로 화순 대곡리와 함평 초포리 유적을 들 수 있습니다.
화순 대곡리 유적은 1971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졌고, 하나의 무덤에서 총 13점의 청동 유물이 발견되어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한국식 동검 5점, 청동 도끼 1점, 청동 새기개 1점, 정교함의 극치인 잔무늬 거울 2점, 여덟 가지방울 2점, 가지방울 2점으로 모두 국보입니다. 함평 초포리 유적은 1987년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대곡리 유적보다 더 다양한 청동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한국식 동검 4점, 중국식 동검 1점, 투겁창 2점, 꺾창 3점, 도끼 1점, 끌 2점, 새기개 1점, 잔무늬 거울 4점, 장대투겁 방울 2점, 조합식 가지방울 1점, 가지방울[양 끝] 1점, 가지방울[한쪽 끝, 柄付銅鈴] 1점입니다. 역시 하나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입니다. 화순 대곡리 유적은 2단으로 무덤구덩이를 파고 통나무 관을 놓은 후 깬돌로 채운 돌무지널무덤이고, 함평 초포리 유적 역시 깬돌로 채운 돌무지널무덤 또는 돌무지돌덧널무덤으로 추정됩니다.

화순 대곡리 유적 출토 유물, 초기 철기시대, 지름 18.0cm(가장 오른쪽 거울), 국보, 신수2579 등화순 대곡리 유적 출토 유물, 초기 철기시대,
지름 18.0cm(가장 오른쪽 거울), 국보, 신수2579 등

함평 초포리 유적 출토 청동 의기류, 초기 철기시대, 지름 17.8cm(가장 왼쪽 거울), 국립광주박물관, 광1840 등함평 초포리 유적 출토 청동 의기류, 초기 철기시대,
지름 17.8cm(가장 왼쪽 거울), 국립광주박물관, 광1840 등

무덤 형태나 출토 유물로 봤을 때 두 유적 모두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전 덕산이나 논산 청동 방울들도 비슷한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화순 대곡리나 함평 초포리 유적보다 앞선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유적 등에서는 이런 종류의 방울은 보이지 않고 검파형, 방패형, 원개형, 나팔형과 같은 청동 의기들이 출토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서 출현하는 이 시기 돌무지널무덤의 형태는 매장할 ‘한 사람’을 위해 깊은 구덩이를 파고 최고 수준의 청동기를 많이 넣었다는 점에서 강력한 지배자가 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덕산과 논산 역시 한반도 서남부 지역이므로 비록 발굴이 된 것은 아니지만 이 청동 방울들의 출토 위치에 신빙성을 더해줍니다. 특히 전 논산 출토 청동 방울의 경우 국보로 지정된 숭실대박물관 소장 잔무늬 거울과 같은 위치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는데, 잔무늬 거울의 무늬 배치가 화순 대곡리 출토품과도 매우 비슷합니다. 따라서 전 덕산과 논산의 청동 방울들도 당시 그 일대를 호령한 지배자의 무덤에 넣었던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청동 방울이 담고 있는 사회상

전 덕산 청동 방울들은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른 유적들에서도 청동 방울은 대개 쌍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막대기에 끼워서 또는 양손에 직접 쥐고 흔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덟 가지방울에는 뒷면에 고리가 있습니다. 이는 손에 직접 쥐고 흔들었던 것이 아니라 옷 등 어딘가에 매달아 사용한 것일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청동 방울 가운데 현재까지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막대에 끼워 흔든 장대투겁 방울입니다. 다른 방울들에 비해 비교적 긴 시간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태나 내부 구조로 시간의 변화를 추정하기도 합니다.
청동 방울들에는 짧은 선과 점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무늬가 베풀어져 있습니다. 특히 여덟 가지방울의 몸체 앞면에는 선과 점으로 이루어진 ‘十’ 자 또는 방사상의 무늬가 보이는데 이는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덤에서 발견되는 청동 방울들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라는 특정 시기에 한반도 서남부의 특정 지역에서 지배자에게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청동 방울들은 검푸른 빛을 띱니다. 하지만 갓 만들어진 청동기는 광택이 있는 금색에 가까웠습니다. 또한 방울에 베풀어진 태양 무늬가 보여주듯이 농경 사회에서 자연 현상은 사람들의 큰 관심사였습니다. 자연 현상은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자 숭배와 신앙의 대상이었고, 자연스레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권위가 지배자에게 부여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지배자가 농경과 관련된 의례에서 청동 방울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녹이 슬기 전엔 반짝반짝 황금빛을 내뿜었을 청동기들이 지배자가 주관하는 종교적 행위에 신성함과 위엄을 더했고 다양한 모양의 방울 등으로 발전해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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