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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역관(監役官)
- 감조관(監造官)
- 감조관(監造官)
- 감조관(監造官)
- 감찰(監察)
- 감찰(監察)
- 거안자(擧案者)
- 거안자(擧案者)
- 거안자(擧案者)
- 거안자(擧案者)
- 거안자(擧案者)
- 거안자(擧案者)
- 거안자(擧案者)
- 거안자(擧案者)
- 거안자(擧案者)
- 거안자(擧案者)
- 거안자(擧案者)
- 거안자(擧案者)
- 경신추존숭시옥책(庚申秋尊崇時玉冊)
- 경신춘존숭시옥책(庚申春尊崇時玉冊)
- 계사존숭시옥책(癸巳尊崇時玉冊)
- 계유존숭시옥책(癸酉尊崇時玉冊)
- 교명차비(敎命差備)
- 금등자이(金鐙子二)
- 금등자이(金鐙子二)
- 금보(金寶)
- 금보(金寶)
- 금보차비(金寶差備)
- 금보차비(金寶差備)
- 금보차비(金寶差備)
- 금부도사(禁府都事)
- 금부도사(禁府都事)
- 금부도사(禁府都事)
- 금월부일(金鉞斧一)
- 금월부일(金鉞斧一)
- 금입과일(金立瓜一)
- 금입과일(金立瓜一)
- 금장도일(金粧刀一)
- 금장도일(金粧刀一)
- 금횡과일(金橫瓜一)
- 금횡과일(金橫瓜一)
- 나장(羅將)
- 나장(羅將)
- 나장(羅將)
- 낭청(郎廳)
- 낭청(郎廳)
- 낭청(郎廳)
- 낭청(郎廳)
- 낭청(郎廳)
- 낭청(郎廳)
- 낭청(郎廳)
- 낭청(郎廳)
- 내시(內侍)
- 내시(內侍)
- 내시(內侍)
- 내시(內侍)
- 내시(內侍)
- 내시(內侍)
- 내시(內侍)
- 내시(內侍)
- 내시십(內侍十)
- 도감(都監)
- 도제조(都提調)
- 도청(都廳)
- 도청(都廳)
- 동반(東班)
- 모절이(旄節二)
- 모절이(旄節二)
- 배안상(排案牀)
- 배안상(排案牀)
- 배안상(排案牀)
- 배안상(排案牀)
- 배안상(排案牀)
- 배안상(排案牀)
- 배안상(排案牀)
- 백택기(白澤旗)
- 백택기(白澤旗)
- 별감(別監)
- 별감(別監)
- 별감육(別監六)
- 별감육(別監六)
- 병오존숭시옥책(丙午尊崇時玉冊)
- 병자존숭시옥책(丙子尊崇時玉冊)
- 병조당상(兵曹堂上)
- 봉선사(鳳扇四)
- 봉선사(鳳扇四)
- 부관(部官)
- 부장(部將)
- 부장(部將)
- 사관(史官)
- 사관(史官)
- 사령(使令)
- 사령(使令)
- 사령(使令)
- 사령(使令)
- 사령(使令)
- 사령(使令)
- 상의원가관이(尙衣院假官二)
- 서리(書吏)
- 서리(書吏)
- 서리(書吏)
- 서리(書吏)
- 서리(書吏)
- 서리(書吏)
- 서리(書吏)
- 서리(書吏)
- 서반(西班)
- 섭사복정(攝司僕正)
- 섭사복정(攝司僕正)
- 섭통례(攝通禮)
- 섭통례(攝通禮)
- 소동내시십(小童內侍十)
- 승지(承旨)
- 승지(承旨)
- 신미존숭시옥책(辛未尊崇時玉冊)
- 신여(神輿)
- 신연(神輦)
- 옥보(玉寶)
- 옥보(玉寶)
- 옥보(玉寶)
- 옥보(玉寶)
- 옥보(玉寶)
- 옥보(玉寶)
- 옥보(玉寶)
- 옥보(玉寶)
- 옥보(玉寶)
- 옥보(玉寶)
- 옥보차비(玉寶差備)
- 옥보차비(玉寶差備)
- 옥보차비(玉寶差備)
- 옥보차비(玉寶差備)
- 옥보차비(玉寶差備)
- 옥보차비(玉寶差備)
- 옥보차비(玉寶差備)
- 옥보차비(玉寶差備)
- 옥보차비(玉寶差備)
- 옥보차비(玉寶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옥책차비(玉冊差備)
- 욕석차비(褥席差備)
- 욕석차비(褥席差備)
- 욕석차비(褥席差備)
- 욕석차비(褥席差備)
- 욕석차비(褥席差備)
- 욕석차비(褥席差備)
- 우상군(右廂軍)
- 우상군(右廂軍)
- 우상기(右廂旗)
- 우상장(右廂將)
- 은각답(銀脚踏)
- 은관자(銀罐子)
- 은교의(銀交倚)
- 은등자이(銀鐙子二)
- 은등자이(銀鐙子二)
- 은우자(銀盂子)
- 은월부일(銀鉞斧一)
- 은월부일(銀鉞斧一)
- 은입과일(銀立瓜一)
- 은입과일(銀立瓜一)
- 은장도일(銀粧刀一)
- 은장도일(銀粧刀一)
- 은횡과일(銀橫瓜一)
- 은횡과일(銀橫瓜一)
- 임신존숭시옥책(壬申尊崇時玉冊)
- 임오책례시교명옥책(壬午冊禮時敎命玉冊)
- 임인존숭시옥책(壬寅尊崇時玉冊)
- 작선삼(雀扇三)
- 작선삼(雀扇三)
- 장마일(仗馬一)
- 장마일(仗馬一)
- 장족아일쌍(長足兒一雙)
- 전부고취(前部鼓吹)
- 전부고취(前部鼓吹)
- 전사대군(前射隊軍)
- 전사대기(前射隊旗)
- 전사대장(前射隊將)
- 전악(典樂)
- 정묘존숭시옥책(丁卯尊崇時玉冊)
- 정원(政院)
- 정축상시시옥책(丁丑上諡時玉冊)
- 제조(提調)
- 제조(提調)
- 제조(提調)
- 제조(提調)
- 좌상군(左廂軍)
- 좌상기(左廂旗)
- 좌상장(左廂將)
- 주장내시십(朱杖內侍十)
- 주장내시십(朱杖內侍十)
- 청개(靑蓋)
- 청개(靑蓋)
- 촉롱삼(燭籠三)
- 촉롱삼(燭籠三)
- 총부당상(摠府堂上)
- 충의(忠義)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충찬위(忠贊衛)
- 한성부당상(漢城府堂上)
- 향정자(香亭子)
- 향좌아일쌍(香佐兒一雙)
- 홍개(紅蓋)
- 홍양산(紅陽繖)
- 후사대(後射隊)
- 후사대(後射隊)
- 후사대기(後射隊旗)
- 후사대장(後射隊將)

1759년(영조 35) 5월 6일 거행된 인원왕후 김씨(仁元王后 金氏, 1687~1757) 신주 부묘 과정을 기록한 『인원왕후부묘도감의궤(仁元王后祔廟都監儀軌)』에 수록된 반차도이다. 숙종(肅宗)의 둘째 계비인 인원왕후는 1757년(영조 33) 3월 26일 창덕궁 영모당(永慕堂)에서 승하한 후 7월 11일 발인하여 12일 고양의 명릉(明陵) 오른쪽 언덕에 안장되었고, 왕후의 우주는 같은 날 창경궁 문정전(文政殿)에 마련된 혼전에 모셔졌다. 혼전의 영좌에 봉안되어 있던 우주는 첫 번째 기일에 연제를 지내면서 밤나무로 만든 연주(練主)에 존호와 휘호, 시호를 합쳐 ‘혜순자경헌열광선현익강성정덕수창영복융화정의장목인원왕후(惠順慈敬獻烈光宣顯翼康聖貞德壽昌永福隆化定懿章穆仁元王后)’라고 쓴 정식 신주가 되었다. 왕후의 사후 휘호는 ‘정의장목(定懿章穆)’, 시호는 ‘인원(仁元)’이었고 앞부분은 생전에 10번에 걸쳐 받은 존호였다. 3년 상기가 끝나고 1759년 5월 5일 영조(英祖)와 세자가 신주를 모시고 종묘에 나아가 이튿날 숙종의 신실(神室)에 봉안하였다.
도감에서는 1차 예행연습[初度習儀] 하루 전인 4월 24일 전례에 따라 반차도를 그려서 영조에게 올렸다. 어람용 1건을 올리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때에는 3건의 어람반차도를 제작하여 세자와 세손에게도 올렸다. 그런데 5월 2일 3차 예행연습 후 영조가 책은 요여에, 보는 채여에 따로 모시라고 전교함에 따라 이틀 뒤 반차도를 고쳐 그려서 다시 올렸다. 당시에는 발인 때처럼 책과 보를 하나의 요여에 모시기로 하고 반차도가 제작되었는데 영조는 나라의 기강을 세운다는 차원에서 도감 당상을 파직하고 부묘 의례의 절차대로 책과 보를 따로 모시도록 한 것이다.
이 반차도는 부묘의식 후 제작된 7건의 의궤 중 어람용 의궤에 수록된 것으로, 인원왕후의 신주를 문정전에서 종묘로 봉안해 가는 행렬을 순서대로 그렸다. 행렬은 소가(小駕)로 인도하고 전사대(前射隊)가 선두에서 시위하는 가운데 왕후의 의장, 책·보류를 모신 요여와 채여, 전부고취, 신주를 모신 신련(神輦)이 나아가며, 도감 관원들이 수가하고 후사대가 서는 순서로 편성되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수가 행렬은 반차도로 그려지지 않았다. 왕실 최고 어른이자 영조의 후원자로서 생전에 10번에 걸쳐서 받은 존호의 책과 보를 요여와 채여 20부에 각각 모심에 따라 예모를 갖춘 긴 신주 행렬이 편성되었다.
이 반차도는 도장[印刻]을 활용한 분상용 의궤 반차도와는 달리 인물과 가마, 말들을 일일이 그려서 완성하였다. 가는 붓으로 인물의 이목구비와 옷, 관모, 들고 있는 물건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채색을 공들여 하였다. 상들의 균형이 잘 잡히고 크기도 고를 뿐더러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어 숙련된 솜씨를 느낄 수 있다. 한편 가마는 나무판에 새겨서 찍고 윤곽선과 문양 및 채색을 더하여 완성하였는데, 입체형 가마 묘사와 가마꾼 배치에서 실제 행렬을 묘사한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의식에 참여한 관원 및 군관들이 품계에 맞게 한두 명씩 거느리던 구종배들이 묘사되지 않고 대기인 백택기를 들던 의장군이 3명에서 1명으로 바뀌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한 반차도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송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