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명칭
등록문화재 운낭자상(2012), 雲娘子像, 채용신 필 운낭자 초상, 蔡龍臣筆雲娘子肖像
-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종이
- 작가
채용신(蔡龍臣)
- 분류
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 크기
세로 120.5cm, 가로 62cm
- 지정문화유산
등록문화유산
- 소장품번호
본관 11644
운낭자상(雲娘子像)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이 상은 최연홍(1785~1846)이라는 기녀의 초상이다. 운낭자는 그녀의 초명이다. 상은 입상으로서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를 입고 있으며 저고리 밑으로 젖가슴이 살짝 보인다. 치마주름사이로 살짝 드러난 반달모양의 흰버선을 표현하여 전반적으로 18~19세기의 미인도에 흔히 표현되는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부산동아대학교 소장인 <미인도>와 전 채용신작 <팔도미인도병(八道美人圖屛)>의 양식과 부분적으로 유사하다. 단정하게 빚어내린 쪽머리에 잠(簪)을 꽂고 있지만 어떤 잠인지는 잘 알 수 없다. 팔에 통통한 아기를 안고 있어서 그림의 우측의 제기(題記)에 씌어진 대로 27세의 젊은 어머니였던 운낭자를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운낭자는 원래 평안남도 가산고을의 청기(廳妓)로서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군수와 시아버지가 사망하였는데 이때 그녀가 남편과 시부모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지냈고 시동생을 간호하여 회생케 하였다고 한다. 홍경래 난이 평정되자 나라에서는 그녀를 표창하여 기적(妓籍)에서 제외시키고, 그 초상화를 계월향의 사당인 평양의 의열사(義烈祠)에 함께 봉안하였다 전한다. 작가는 채용신으로 호는 석지(石芝), 본관은 평강(平康)이다. 벼슬은 종2품에 이르렀으며 그림은 각 화목에 능하였다. 특히 초상화가로 명성이 높았고, 고종의 어진을 그렸다. 제작연대는 그림의 제기에 “갑인월석지사”라고 씌어있어서 1914년에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채용신은 전주에 낙향한 이후에 전라도 지역의 우국지사들의 상을 다수 제작하였는데, 이 상도 여인애국지사로서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유의사항
- 지정문화유산의 실물 복제품을 제작하고자 하는 경우는 별도의 허가 신청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