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명칭
정선 필 수성구지도, 鄭敾筆壽城舊址圖, 수성의 옛터
-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종이
- 작가
정선(鄭敾, 1676-1759)
- 분류
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 크기
세로 52.9cm, 가로 87.2cm
- 소장품번호
동원 3311
인왕산 기슭의 ‘수성壽城 옛 터’를 그린 그림이다. 옥류동玉流洞의 계류가 흘러 백운동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던 자수원慈壽院 터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자수원은 광해군光海君(재위 1608~1623) 때 선왕의 후궁들을 모여 살게 했던 자수궁慈壽宮과 수성궁이 인조仁祖(재위 1623~1649) 때 비구니 승원으로 바뀌게 되면서 얻은 명칭이다. 자수원은 현종顯宗(재위 1659~1674) 때인 1661년 철폐되었는데, 1710년 도성 내에 창고를 지을 자리로 ‘인왕산 아래 수성궁 터’가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이때는 건물이 완전히 없어진 후이고 그 자리를 ‘수성 옛 터’로 불렀을 거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정선은 화면 오른쪽 아래 언덕에 의지하여 있는 자수원이라고 생각되는 건물을 단정하게 그려 넣었다. 한편 이 곳은 안평대군의 비해당이 있던 곳으로도 생각된다. 『한경지략漢京識略』과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한성부漢城府 조에 보면 효령대군孝寧大君(이보李補, 1396~1486)의 집이 인왕산仁王山 기슭에 있었는데 바로 안평대군安平大君(이용李瑢, 1418~1453)의 옛 집터라고 되어 있다. 19세기 소설 『수성궁몽유록壽聖宮夢遊錄』에는 안평대군의 집을 ‘수성궁’으로 부른다. 그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같은 장소였다고 생각되는 수성궁, 자수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정선이 노년에 살았던 인곡정사仁谷精舍도 이 근처다. 정선은 옥류동 계곡의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이 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환기시킴으로서 그림에 구체적인 장소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