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평양성도
  • 다른명칭

    平壤城圖, 西京全圖, 서경전도

  •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섬유 - 면

  • 분류

    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 크기

    높이 163.5cm, 세로 377.5cm

  • 소장품번호

    신수 1455

다른 평양성도와는 달리 청록산수화풍으로 그린 이 그림은 화가의 묵서나 도장이 날인돼 있지 않아, 제작된 시기와 화가를 알기어렵지만 서툰 필치의 계화보다는 산수나 인물표현에 더 능숙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6세기 고구려의 수도성으로 건설된 이후로 1,300여 년 동안 번성하여 온 옛 평양의 전경을 굽어본 형식인 오른쪽으로는 높이솟은 대성산과 대동강을 비롯한 자연풍경을 실감 있게 묘사하였으며, 성곽과 건물들, 정연한 도로망이 비교적 상세하고 빽빽하게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성곽이나 자연경관을 모두 담으려고 했다는 것을 화면 가득한 자연지물과 건축물 등에서 확인된다. 대동강 변에 빨래하는 아낙네들에서부터 십리사정十里沙汀에 가마를 들고 가는 인물, 말 타고 달리는 인물, 배를 기다리는 다양한인물상들이 묘사되어 당시 평양의 풍속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록 뛰어난 화풍은 아닐지라도 평양성의 방대한 경관과 내용을 세세하고 꼼꼼한 필치로 표현함으로써 화면에 생생함을 부여해주고 있다. 그러나 전각과 지명표기를 가로와 세로로 병행함으로써 통일성이 결여된 점이나 배탄 인물들의 간략한 표현에 비해 배에 탄 인물의 수가 유독 많은 편은 다른 작품과 다른 특징이다. 또 피마준이 구사된 바위, 선유하는 인물과 능라도 주변에 땔감을 한가득 싣고 가는 인물들의 표현이 다른 작품과는 이채로운 특징이다. 이 그림에는 시대를 판정할 만한 건물이 묘사되어 있어 주목된다. 대동문에서 왼쪽 성곽으로 이어지는 끝에 종탑이 있는데, 그 종탑 아래에 육로문이 자리하고 있다. 십폭 중 일곱 번째 화면에 속한 육로문 왼쪽에 전보국電報局이라는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조선 말기 관청의 하나로, 전기 통신 업무를 관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 사무국이다. 1885년 8월 20일 한성 전보국이 설립된 이후로 다음해에 평양 등에 전보분국이 설립되었다. 따라서 이그림은 전보국이 개설된 이후 20세기 초에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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