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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동기창과 심주를 본받은 산수
- 다른명칭
山水圖
-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종이
- 작가
강세황(姜世晃, 1713-1791)
- 분류
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 크기
세로 23cm, 가로 462.1cm
- 소장품번호
덕수 2824
강세황은 선비 화가로 자는 광지(光之), 호는 표암(豹菴)이다. 산수, 노송, 매화, 대나무, 화조화 등 다방면의 소재를 다루면서 남종화풍의 산수화 및 진경산수화 등을 남겼다.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로 불렸으며, 당시 화단에서 이론가 및 비평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병중의 수지(綬之)를 위해 그렸다고 하는 이 그림은36세 때의 작품이다. 수지는 영중추부사를 지낸 이복원(李福源, 1719-1792)의 자(字)로 생각된다. 두 폭의 산수도와 발문(跋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의 산수도는 동기창(董其昌)의 <동원필의산수도(董源筆意山水圖)>를 본떠 그린 것으로 거칠면서도 힘찬 강세황 중년의 묵법이 생생하다. 또 두 번째 산수도는 심주(沈周)의 붓솜씨를 본떠 그린 것인데, 앞의 그림보다 한층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주며, 먹의 사용과 담채도 투명하고 능숙하다. 먹을 흠뻑 묻혀 그리고 연하게 칠한 위에 부분적으로 진한 먹을 더한 효과는 심주의 솜씨를 나름대로 소화한 모습인데 강세황이 이미 중년에 이루어낸 화가로서의 역량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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