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유물명 :
- 수막새틀(圓瓦當 鎔范)

- 유물번호 :
- 본관(本館) 191
- 유물설명 :
-
흙으로 빚어 구운 것으로 수막새를 만드는 데 사용된 틀이다. 고정판 위에 올려놓고 둥글거나 네모진 진흙 덩어리를 위에서 눌러 찍어내므로 똑같은 무늬의 기와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 2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쪽 모서리가 떨어져나갔다. 가장자리에는 원무늬가 돌아가고 씨방에는 연꽃무늬가 16잎 배치되어 있다.
|
 |
- 유물명 :
- 흑갈유 병(黑褐釉甁)

- 유물번호 :
- 본관(本館) 215
- 유물설명 :
-
이 유물은 얕은 입 둘레, 짧고 가는 목, 둥근 몸통, 굽다리가 안쪽으로 감춰져 있는 가권족(假圈足)의 형태의 병이다. 바닥 면을 제외한 전체에 흑갈유가 발라져 있고 그 위에 균일한 형태의 황갈색의 점박이 무늬가 입혀져 있다.
|
 |
- 유물명 :
- 약사불(金銅藥師佛立像)

- 유물번호 :
- 본관(本館) 244
- 유물설명 :
- 육계가 매우 크고 높으며 코가 짧고 귓불은 뾰족하여 특이한 인상을 보인다. 양 어깨를 덮도록 입은 대의가 가슴에서 넓은 V자를 그리고 그 아래로 U자형의 주름이 반복적으로 드리워져 있다. 몸의 전체적인 볼륨감은 매우 빈약하여 배 부분만 돌출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불상의 허벅지는 그 양감 때문에 소맷자락보다 더 돌출되어 있지만 이 불상은 신체에 양감이 거의 없어 하반신이 소매에 둘러싸인 듯 보인다. 약합을 든 손은 신체에 비해 상당히 크다. 오른쪽 소매 뒤쪽으로 나 있는 깊은 각선은 팔꿈치의 양감을 암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낳았다. 보통 불상의 치마는 발목 길이까지 내려오는데, 이 불상의 경우는 대좌에 살짝 끌리도록 긴 점이 특징적이다. 대좌는 고식을 따랐으며 불상과 함께 주조되었다. 등 뒤에 광배꽂이가 하나 있으며, 주조 구멍은 보이지 않는다.
|
 |
- 유물명 :
- 모견도(狗圖)

- 유물번호 :
- 본관(本館) 255
- 유물설명 :
-
정중(靜仲) 이암(李巖, 1499-?)은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谷)의 증손이며, 두성령(杜城令)을 제수 받았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으나, 짐승 그림에 뛰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인종실록』을 보면, 그는 이상좌(李上佐)와 함께 중종(中宗)의 초상을 그릴 화가로 승정원에 의하여 추천되기도 하였다.
그의 동물 그림은 한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독자적인 화풍을 보여주는데, 이 그림에서도 어미개와 강아지의 모습을 따뜻한 분위기로 그려내고 있다. 어미개와 강아지는 털 색깔이 바뀌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번지게 표현하는 등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한 것과 달리 배경의 나무는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
 |
- 유물명 :
- 겨울 산수(冬景山水圖)

- 유물번호 :
- 본관(本館) 281
- 유물설명 :
-
김수철(金秀哲)은 조선 말기에 유행했던 이색적인 화풍을 구사한 화가로 새로운 감각을 추구하였다. 자는 사익(士益), 호는 북산(北山)이며, 산수 및 화초 그림에 뛰어났다.
화면 윗쪽에는 ″계산(溪山)은 고요하고 물어 볼 사람 없어도, 임포 처사의 집을 잘도 찾아가네(溪山寂寂無人間 好訪林逋處士家)″라는 시문이 적혀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중국 송(宋) 나라 시대에 세상을 등지고 숨어서 산 임포(林逋, 967-1028)의 이야기를 그린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임을 알 수 있다. 임포는 서호(西湖)의 외딴 산 속에 살면서 20년 동안 마을에 내려오지 않은 채 학과 매화를 사랑하며 살았으며 후대에 많은 존경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는 간략한 필치와 단순한 형태, 엷지만 선명한 색채가 두드러진다. 산과 바위의 음영 표현 없이 윤곽선만으로 표현되어 김수철 그림의 특징인 간결함이 잘 드러나 있다. 산과 바위를 연한 먹빛으로 칠하고 태점(苔點 : 산이나 바위, 땅 또는 나무 줄기에 난 이끼를 표현하는 작은 점)을 찍어 장식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온통 먹빛인 가운데 임포가 머물고 있는 집과 임포의 옷색은 붉은색이며 다리 건너 그를 찾아오는 이의 옷은 푸른색으로 서로 산뜻한 대비를 이룬다.
|
 |
- 유물명 :
- 염거화상 탑명동판 탁본(廉巨和尙塔銘銅板拓本)

- 유물번호 :
- 본관(本館) 289
- 유물설명 :
-
이것은 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 안에서 발견된 금동탑지를 탁본한 것으로 염거화상은 도의의 제자이자 체징의 스승으로 가지산문의 제 2조로 꼽힌다. 이것은 경전을 새기듯 세로로 행을 만들어 줄을 치고, 그 안에 뾰족한 도구로 새겼으며 글자의 윤곽만을 베껴 그렸다. 원래의 동판은 필획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는데, 동판이라는 재질의 특성상, 탁본은 원본만큼 잘 보이지는 않는다. 이 탑지를 통해 탑지가 들어 있던 승탑이 회창 4년, 즉 844년(신라 문성왕 6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승려의 탑지로서는 최초로 남겨진 것이며, 여기에 보이는 불멸(佛滅) 연대는 당시 통용되던 불교 연기를 알려 주고 있다. 이 금동탑지가 발견된 승탑은 현재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
 |
- 유물명 :
- 천희오년탑명 탁본(天禧五年塔銘拓本)

- 유물번호 :
- 본관(本館) 290
- 유물설명 :
-
이것은 고려 명장 강감찬(姜邯贊)이 흥국사(興國寺)터에 세운 석탑에 새겨진 명문을 탁본한 것이다. 흥국사는 경기도 개성시 만월동에 있었던 절로 고려시대의 가장 중요했던 국찰(國刹) 가운데 하나이다. 이 탑의 기단 가운데에는 6행으로 글이 새겨져 있다. 이 탑 속에는 강감찬이 제목을 붙여 지은 시[題詩]와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도 있었다고 전한다. 명문에 보이는 천희 5년은 1021년(고려 현종 12년)이다.
|
 |
- 유물명 :
- 약사불(金銅藥師佛立像)

- 유물번호 :
- 본관(本館) 324
- 유물설명 :
- 국내에 남아있는 통일신라 금동불 중에서 비교적 큰 편에 속하는 것이다. 앞의 금동불입상과 마찬가지로 오른팔 부분은 따로 만들어 결합한 별주식이다. 그러나 왼손에 약합을 들고 오른손은 올리고 있어 도상적으로는 앞의 상과 구별된다. 뒷면에는 주조 구멍이 머리에 하나, 몸체 전반에 걸쳐 길게 하나가 뚫려 있으며, 광배 고정용 촉은 목 아래에 돌출되어 있다. 당당한 신체에 볼륨감 있는 몸매, 도드라진 옷주름의 처리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금동불의 특징이 남아 있으나, 코의 묘사가 어색하고 대의 끝자락을 양쪽 바깥으로 뻗치게 하는 등 표현상의 과장성이 엿보인다. 함께 전해오는 대좌는 통일신라 때가 아니라 후대에 따로 만든 것이다.
|
 |
- 유물명 :
- 약사불(金銅 藥師佛 立像)

- 유물번호 :
- 본관(本館) 325
- 유물설명 :
-
약사불은 갖가지 질병을 고쳐주며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식과 옷을 제공하는 등,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의 이익과 매우 가까운 부처이다. 보살 신분이었을 때는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12가지 큰 소원을 지녔고, 부처가 된 후에는 동방에 위치한 유리광세계(琉璃光世界)를 다스리게 되었다.
약사불상은 일반적으로 둥근 약단지를 든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약사불상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통일신라시대이다. 주로 독립상으로 제작되었지만, 여러 방향에 머무르는 부처를 표현한 사방불(四方佛)에서는 동방에 머무르는 부처로 표현되었다. 특히 2-2 약사불은 현재 약단지를 쥐고 있지 않지만, 왼손의 오므린 손바닥이 마치 약단지를 쥔 듯 패여 있어 별도로 제작된 약단지를 쥐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
- 유물명 :
- 약사불(金銅 藥師佛 立像)

- 유물번호 :
- 본관(本館) 325- 2
- 유물설명 :
-
곱슬머리에 상투모양의 머리가 솟은 불입상이다.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왼손바닥을 위로 향하여 든 팔의 자세에서 본래 약기를 들고 있던 약사불임을 알 수 있다. 대의는 편단우견식으로 몸의 왼쪽에 착용했고 이와 별도로 오른쪽 상체에 또다른 옷을 착용하였다. 가슴까지 파인 옷깃 위로 속옷이 비스듬히 노출되어 있다. 옷주름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감산사 아미타불상과 같은 Y자 형으로 표현되었다.
살이 많이 찌고 표정이 엄숙하며 늘어진 옷단이나 옷주름의 표현이 매우 과장되었다. 이러한 양식적 특징은 통일신라 후반의 불상에서 자주 보이는 것이다.
|